[파워K우먼]공교육의 '나비효과' 윤혜정…"내가 롤모델인 학생들 클 때까지"

EBS 개념의 나비효과 윤혜정 선생님 인터뷰
"엄마주도학습 임계점…내 아이 들여다봐야"
"학교가 배움의 즐거움 아는 공간 됐으면"

사교육이 상수처럼 자리 잡은 한국에서 공교육의 힘을 굳건히 보여주고 있는 선생님이 있다. 윤혜정 교사는 2007년부터 학교와 EBS에서 국어를 가르쳐오고 있는 '1타 강사'이자 22년 차 국어 교사다.


'충분히 사교육 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왔다. 윤 교사는 "전혀 다른 직업"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연봉 100배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그의 선택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고맙다'는 표현을 많이 듣는다"며 "학교, EBS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보람이 충분하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대학을 가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공간'이 되길 소망한다.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것처럼 학생들 개개인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공교육을 지키는 큰 이유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를 롤모델로 삼은 학생들이 교사가 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바람은 무엇보다 크고 소중한 이유로 느껴졌다. 지난달 26일 공교육의 롤모델이 된 그를 만났다.


윤혜정 강일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윤혜정 강일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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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사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는지.

▲어렸을 때부터 교사를 꿈꾼 건 아니다. 고3 때는 PD를 꿈꿨다. 대학 원서를 쓰면서 합격한 전공 중 고민 끝에 교육학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됐다. 1학년 때는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다만 역사보다 국어 선생님이 아이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생 실습을 경험하면서 더 간절하게 꿈꾸게 됐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너무 많다. 올해로 교사 22년 차인데 (매해) 공통적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들은 아이들이 생활적인 측면에서나 공부하는 자세 등 변화했다고 느꼈을 때이다. 또 아이들이 내가 자기 편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너무 뿌듯하다.

-학생들의 공부 습관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지난해 2학년 아이들 담임을 맡게 됐다. 성적이 좋지 않거나 무기력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도 성적을 올리고 싶어 한다. 성적이 좋으나 안 좋으나 학업, 성적, 진로에 고민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 아예 시도를 못 하는 것이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신청을 받아 기본을 쌓을 수 있게끔 과목별 EBS 강의를 선정해줬다. 단체 톡방에는 계획표를 공유하고 아이들이 이에 맞춰 인증 사진을 올리면 내가 표에서 체크해 다시 공유했다. 그렇게 하나씩 완강을 시키며 기초를 다져나갔다. 자기주도 학습이 안 되면 EBS 인터넷 강의를 혼자 완강하기가 어려운데 담임 선생님이 이끌어주니까 아이들도 해내더라.


윤혜정 강일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윤혜정 강일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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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마크인 EBS '개념의 나비효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조차도 고등학교 때 국어 공부 방법을 모르고 문제만 많이 풀었다. 교사가 돼보니 '아이들이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혼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도구는 쥐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국어의 개념이라는 말이 거의 없었다. EBS 강의 교재를 만들 때 국어 상하 교과서, 평가원 기출문제의 모든 선지와 문제들을 쪼개서 항목별로 분류하고 예문, 작품을 넣었다. 개념을 익혔다면 풀기 쉬운 문제도 넣었다. 그때 강의의 이름은 '개념으로 제대로 독(讀)하게'였다. 당시에는 매해 강의 이름을 바꿨어야 했는데 이듬해에 나온 게 '개념의 나비효과'다. 개념을 잡으면 얼마든지 스스로 공부해 나비 효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 5분도 안 걸려 지은 이름이다. 그다음 해에도 새롭게 이름을 바꿨어야 했는데, 당시 CP(책임프로듀서)님이 '개념의 나비효과' 이름이 좋다며 그대로 가자고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국어 1타 강사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 수 있음에도 공교육을 지키고 있다.

▲학교에서 유명해지면 사교육으로 가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사실 둘은 공통점이 있지만, 전혀 다른 직업이다. 우리 사회에는 명성이나 수입을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여러 제안을 주시는데, 계약금만 봐도 연봉의 100배 정도 된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크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학교를 방문하거나 새롭게 부임한 경우 선생님들께서 'EBS에 남아 강의를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고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 아이들 중에서도 나를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아이가 많다. EBS로 공부해 '나도 EBS에서 많은 아이들에게 나눠줘야지'라는 생각으로 교사라는 꿈을 이룬 아이들이 클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고도 싶다. 큰 그런 건(이유) 없다.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우선시 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아픈 부분이다. 저 역시 학부모인데 이 사회에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고 학교에선 체크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것 같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학교에선 배우지 않고, 선생님이 잘 가르쳐줘도 학교 공부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들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서로 내 아이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몇 학년 학습을 하고 있는지 주변 아이와 수치로 비교를 하면서 사교육에 엄청난 비용과 에너지를 쏟는다. 지금은 중·고등학교 할 것 없이 자기주도 학습이 아니라 엄마주도 학습이다. 이런 우리 교육의 문제와 사회의 불안도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해결 방법이 있을까.

▲위로부터의 제도들도 문제지만 아래에서부터 보면 각 가정에서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주변과 비교하면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너무나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내 아이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뭘 도와줘야 하는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윤혜정 강일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윤혜정 강일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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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을 보내는 듯하다. 일, 가정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할 일이 많으니 이를 감당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수면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 다만 나는 공립학교 교사라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이조차도 마음 편하게 누리지 못하는 여성이 많은데, 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남편과 서로 일과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교차로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남성들의 육아휴직도 예전보다는 많아진 편이지만 그런데도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응원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꾸는 공교육이 있다면.

▲우리 학교 아이들 중엔 학교 오는 게 좋으냐고 물으면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가 즐거운 아이들이 눈에 보이긴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전엔 학교에서 뭔가를 배우는 게 재밌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 오는 것이 즐겁지 않아 보인다. 내신 시험을 본 다음 자퇴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는 학교가 대학을 가기 위한 성적을 받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큰 것을 보여준다.


-교사 윤혜정과 인간 윤혜정의 꿈은.

▲나는 EBS 등 외부 활동을 많이 한 교사였지만, 선생님의 빈 공간이 없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앞으로는 학교 아이들에게 조금 더 집중해 한 명 한 명 들여다볼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인간 윤혜정으로는 언젠가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시작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의 다양한 꿈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교사로서 최선을 다 해봤으니 완전 다른 직업을 선택해 이것이 또 아이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윤혜정 선생님은
현재 강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2003년 성균관대 교육학·국어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부터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고 있다. 2007년 처음으로 EBSi 국어 영역 강사를 맡았으며 2011년부터는 많은 수능 수험생들의 국어 길라잡이가 된 EBS '개념의 나비효과' 강의를 진행해오며 국어 1타 강사로 불리고 있다. 사교육계의 러브콜에도 공교육을 지키며 2009년, 2024년 두 차례 교육부장관상을 받았으며 2010~2012년에는 EBS 언어영역 최우수 강사로 연속 선정됐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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