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관부처 4개로 늘어난' 원전 업무, 한수원 혼란 가중(종합)

운영은 기후부, 수출은 산업부, R&D는 과기정통부, 안전은 원안위
정책 일관성·협상력 흔들…국감 대응 부담도 가중

'소관부처 4개로 늘어난' 원전 업무, 한수원 혼란 가중(종합)

정부가 32년 만에 산업과 에너지 정책을 갈라놓는 개편안을 확정하면서 원전 업무에 관여된 부처는 4개로 늘어났다. 원전 운영은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수출은 산업통상부, 연구개발(R&D)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안전 규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각각 맡는 구조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최소 두세 부처에 동시에 보고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보고 체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장에서는 "정책 효율성이 떨어지고 국감 대응만으로도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고 체계 겹치며 행정 부담 가중

9일 업계와 한수원에 따르면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은 원전 운영과 수출을 분리하면서 한수원에 전례 없는 부담을 안겼다는 평가다. 원전은 운영 경험을 토대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연구개발과 안전 관리가 뒷받침돼야 하는 종합 산업이지만, 주무 부처가 4개로 늘어나면서 정책 혼선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수원은 원전 운영과 수출을 동시에 담당하는 실행 주체다. 국내 원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해외에 동일한 모델을 수출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부처가 나뉘면서 보고 체계가 겹치게 됐다. 한수원 관계자는 "운영 현안은 기후부, 수출은 산업부에 각각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부처마다 요구와 관점이 달라 기업은 이중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고 체계가 이원화되면 의사결정 속도는 늦어지고 책임 소재는 불명확해질 수 있다. 해외 협상에서는 국가의 일관된 메시지가 중요한데, 각 부처가 다른 기조를 내세울 경우 협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 일각에서는 "원전은 국가 신뢰를 먹고 사는 산업인데, 부처 분리는 신뢰도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정감사 부담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한수원은 기존에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감을 동시에 준비해왔다. 이번 개편으로 환경노동위원회까지 추가되면 국감 대응만으로 수 주간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수원 관계자는 "기존에도 양쪽 국감을 병행하느라 업무 부담이 컸는데, 앞으로는 환노위까지 대응해야 할 수도 있다"며 "국감 시즌에는 사실상 본연의 업무가 멈출 수 있다"고 토로했다.

국내 공기업 중 강원랜드를 제외하고 복수 위원회 소관 기관은 한수원이 유일하다. 현장에서는 "차라리 원전 업무를 한 부처로 일원화하는 편이 낫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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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목표 충돌, 현장 혼란 가중

정책 목표가 충돌하는 것도 문제다. 기후부는 탄소 감축과 안전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반면, 산업부는 수출 확대와 산업 지원을 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다른 목표가 충돌하면 한수원은 양쪽의 요구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해외 원전 수출은 국내 운영 경험과 안전 관리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기후부가 국내에서는 원전 축소 기조를, 산업부가 해외에서는 수출 확대 전략을 내세운다면 정책 이중성이 불가피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정책과 해외 전략이 따로 놀면 국제 협상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원전 업무가 기후부·산업부·과기정통부·원안위로 흩어지면서 사실상 컨트롤타워는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운영·수출·연구·안전이 모두 다른 부처에 나뉘면 각 부처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고 정책 일관성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원자력학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원전 기능의 분절은 부처 간 칸막이를 높여 통합적 정책 수립을 가로막고, 정책 실패 시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적 폐해를 낳을 것"이라며 비판했다.


학회는 "원자력 정책의 통합적 추진이 절실한 상황에서 단일 사업을 R&D, 건설·운영, 수출로 나누고 담당 부처를 달리하는 것은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며 "산하 기관과 현장 업무자들은 세 부처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릴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원전 수출은 국내의 성공적인 건설 및 운영 경험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내 사업과 해외 사업의 주무 부처를 분리하는 것은 거대한 세계 시장을 앞두고 우리 스스로 수출 경쟁력에 족쇄를 채우는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했다.


최소한 원전 분야만큼은 협업 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동위원회나 합동심의체를 마련해 두 부처 이상이 함께 의사결정을 내리는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혼선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한수원 관계자는 "장밋빛 기후 목표도 중요하지만, 실행 주체가 혼란에 빠지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현장의 효율성을 고려한 조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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