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바이루 정부 불신임…9개월만에 총사퇴

신임 194표 vs 불신임 364표
내년도 긴축 재정안 놓고 야당과 대립
마크롱 책임론…정치적 위기

프랑스의 프랑수아 바이루 정부가 8일(현지시간) 하원 불신임 투표에서 패배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바이루 정부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총사퇴하고, 앞선 미셸 바르니에 정부도 3개월 만에 문을 닫는 등 연달아 단명하며 이들을 총리로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하원은 이날 오후 바이루 정부에 대한 신임 여부 표결에서 신임 194표, 불신임 364표로 불신임을 결정했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 신화연합뉴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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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헌법상 정부는 하원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불신임에 찬성하면 즉각 사퇴해야 한다. 이날 기준 하원 재적 의원은 총 574명(3명 공석)으로 불신임 가결 정족수는 288표다. 범여권을 구성하는 중도와 일부 우파 진영을 제외한 야당 대다수가 불신임 표를 던졌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제5공화국 역사상 정부가 하원의 신임 투표에서 낙마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루 총리는 9일 오전 마크롱 대통령에게 정부 사퇴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엘리제궁은 성명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9일 바이루 정부의 사임을 수락하고 조만간 새 총리를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루 정부는 내년도 긴축 재정안을 둘러싸고 야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프랑스의 공공 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유로로,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 수준이다. 바이루 총리는 국방 예산을 제외한 정부 지출을 동결하고, 공휴일 이틀을 폐지하는 등 내용을 담은 440억유로의 예산 절감과 세수 증대를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 지침을 지난 7월 발표했다.

야당은 격렬하게 반대하며 가을 정기회 소집 즉시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압박했다. 프랑스 여론도 바이루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거세게 반대했다. 이에 바이루 총리는 지난달 25일 의회에 신임 투표를 요청했다. 의회의 신임을 얻어 긴축 재정을 밀어붙이겠다는 전략이다.


바이루 총리는 이날 투표에 앞서 의원들에게 "여러분은 정부를 전복시킬 권한은 있지만, 현실을 지울 권한은 없다"며 "지출은 더욱 증가할 것이며,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부채 부담은 점점 더 무겁고 비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루 정부가 사퇴하며 프랑스는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다섯 번째 총리를 맞이하게 되며 혼돈에 빠질 전망이다.


마크롱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위기다. 극좌 정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며 탄핵안 발의를 예고했다. 보리스 발로 사회당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며 좌파 진영 총리 임명을 촉구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는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에게 다시 묻는 것이라며 조기 총선을 강조했다.


다만 여론조사에서 극우가 우위인 상황에서 선거를 실시할 경우 교착 상태를 초래할 수 있어 마크롱 대통령이 실제 조기 총선을 실시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블룸버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오는 18일 예정된 2026년 예산안 반대 노조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조속히 새 정부를 꾸려야 한다고 밝혔다.


시장은 당장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40지수는 60.06(0.78%) 상승한 7734.84에 마감했다.


그러나 막대한 공공 부채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국가 신뢰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12일 프랑스에 대한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할 예정이다.


미카엘 니자르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멀티에셋·오버레이 책임자는 "이번 정치 위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공공재정 개혁이 크게 진전될 가능성은 작다"며 "금융시장은 이미 체념한 분위기이며, 재정 적자가 더 악화하지 않는 시나리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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