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큰 선비' 동천 김창회 선생 별세

겸양은 뿌리, 수양은 뼈대
유학의 정신으로 한 세대 지탱한 원로 유학자

"선비가 선비다워야 선비지, 돌팔이 같은 게 무슨 선비야"

동천 김창회 선생 생전 모습.

동천 김창회 선생 생전 모습.

말보다 실천으로 도를 전한 사람. 평생을 유교적 삶의 본으로 살아온 '영남의 마지막 선비', 동천 김창회 선생이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선생은 최근 대구 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을 '시골 노인'이라 칭하며 낮추었던 김 선생은, 지역사회와 학계에서는 '현대판 선비'이자 '의성 유학의 살아있는 정신'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는 공식 직함이나 학술적 명예보다 '겸양과 수양'이라는 유학의 본령을 삶 전체에 걸쳐 실천해온 인물이었다.

◆ "겸손이 모든 배움의 시작"… 유학 실천한 조용한 거목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사촌 학맥의 중심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유학의 엄정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국사·향토사·한학에 천착하며 전통 학문의 현대적 계승에 몰두했고,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14년간 교원을 대상으로 한 유교 강의는 지금도 교육계에 회자하고 있다.


그는 "말이 아닌 삶으로 선비다움을 보여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다. 여러 차례 공적 요청을 고사한 것도 '겸양'이라는 유교의 핵심 가치 때문이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생전에 그를 "청빈과 외유내강, 솔선수범의 스승"으로 칭하며 "진정한 선비 정신을 지킨 이 시대의 거목"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김 선생은 2013년 경북도청 신청사 상량문을 집필하는 등 공공 영역에서도 품격과 도덕적 기준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본인은 언제나 '학문을 지키려는 시골 노인일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교육 중심엔 마음 수양 있어야"

그의 삶과 철학은 단지 개인적 덕목을 넘어, 오늘날 사회가 마주한 도덕적 위기를 성찰하게 한다. 김 선생은 생전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교육의 중심에는 반드시 마음 수양이 자리해야 한다"며, 공교육 내 인성교육의 제도화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제자들에게는 늘 "겸손은 모든 배움의 시작이며, 수양은 죽는 날까지 멈춰선 안 된다"는 말을 남겼고, 이는 그의 삶 자체로 증명됐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골 마을에서도 그는 지역의 정신적 지주로 깊은 존경을 받아왔다.


의성 사촌마을 주민들은 "김창회 선생은 단순한 유학자가 아니라 시대를 일깨운 지혜로운 스승이자 거목이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 유고는 유교문화 연구기관 기증 예정… "정신은 남는다"

선생의 장례는 생전 뜻에 따라 조용히 치러지며, 조화나 조문도 정중히 사양했다. 남겨진 유고문과 육필 노트는 향후 지역 유교문화 연구기관에 기증돼 전통 인문 정신 회복의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그가 남긴 말과 침묵, 그리고 한결같은 삶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겸양과 수양'이라는 선비의 가르침은 여전히 이 시대가 마주한 혼란 속에서 중요한 지침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남취재본부 권병건 기자 gb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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