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피셔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 제공. 사진=슈테판 요하만
하인츠 피셔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25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피셔 전 대통령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오스트리아 제11대 대통령으로 재임한 인물이다. 그는 법학을 전공했다. 1975년부터 8년간 사회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아울러 과학부 장관과 하원의장 등 정부와 국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군주제 국가였던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혼란 상황을 경험했다. 1918년 공화국이 출범했을 때는 오스트리아에 대통령이 없었다. 국회의장이 국가원수 역할을 수행했는데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1920년 새로운 공화국 헌법이 확정되면서 연방 대통령 직책을 신설했다. 1929년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했고, 의회 해산권을 추가하는 등 권한을 강화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기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지양했고 사실상 정치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다.
오스트리아의 특징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직선제로 선출하되, 국가는 기본적으로 의회민주주의로 운영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성은 600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조 지배를 받아온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절대 군주에 대한 향수와 거부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역사적인 맥락과 관련이 있다.
피셔 전 대통령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63년 한국이 오스트리아와 수교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방한했던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바로 피셔 전 대통령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했고, 2019년 제주포럼에도 참석한 바 있다. 2018년부터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설립된 반기문세계시민센터에서 공동의장 역할을 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과 함께 기후 위기 극복과 세계 빈곤 퇴치 등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의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피셔 전 대통령은 특유의 겸손한 성품을 바탕으로 협치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것도 정치에 관한 그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2004년 첫 선거에서는 51.5% 득표율로 당선됐다. 재임 기간 국정운영에 관한 국민적인 호평이 이어지면서 2010년 재선 당시에는 79.4%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경험했다.
피셔 전 대통령은 "오스트리아에서는 대통령이 당파적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정부의 결정과 관련해 헌법을 준수하는 한 (대통령이)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 오스트리아 정치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하인츠 피셔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 제공. 사진=리사 로이트너
-오스트리아가 1929년 대통령제 도입을 위해 개헌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스트리아는 수 세기 동안 군주제 국가였다. 그러나 독일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두 나라에서 혁명이 발생했다. 군주제가 공화제로 전환됐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망명했다. 새롭게 수립한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군주제 복귀를 강력히 반대했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주저했다. 당시 정치 지도자들은 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등장하면 군주제 복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 결과 1918년 공화국이 출범했을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국회의장이 국가원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2년 후인 1920년 새로운 공화국 헌법이 확정되면서 '연방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신설됐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했다. 정치적 권한도 거의 없었다. 1920년대 들어 보수 세력이 강해지고 좌파가 약해지면서 더욱 강력한 대통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부에서는 이른바 대통령을 '지도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오랜 협상 끝에 1929년 타협안이 도출됐다. 대통령을 국민 직선제로 선출하며 추가적인 권한을 부여하되 오스트리아는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스템은 현재도 유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은 100년 된 타협안에 기초한다. 법학자와 국민 사이에서는 대통령, 국회, 정부 간 권력 균형이 잘 설계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하고, 총리는 대통령이 지목하는 등 대통령과 총리 선출 방식이 다른데.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만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총리는 국회에서 불신임 투표를 통해 언제든 해임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권력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총리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 신임을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을 해임할 수 있는 의회로부터도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임 투표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 권력 분배가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 권한은 대체로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오스트리아 어떤 정당도 헌법의 이 측면에 대해 진지하게 도전한 적이 없다. 권력 분립은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의 핵심 원칙이었다. 이는 행정부와 의회 간 분리와 대통령 및 정부 내 역할 분리에도 모두 적용된다. 대통령 권한은 정부의 제안에 따라 행사된다. 총리 임명만 예외이며 이 결정에는 정부의 제안이 필요하지 않다.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정당일 경우 권력이 집중될 우려가 있지 않나.
▲오스트리아가 과거 군주제 국가였다는 점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군주의 상징적 후계자처럼 여긴다. 따라서 당파 정치에서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을 기대한다. 1945년 이후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정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다. 사실 이런 상황 자체가 드물었다. 오스트리아 유권자는 권력의 균형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우파 정당이 총리를 배출하면 좌파 성향의 대통령이 선출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뢰받는 대통령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대부분 정당 대표직을 지낸 후보가 선출됐다. 실제로 60세 이상으로 광범위한 정치 경험을 가진 인물이었다. 저는 국회의장 출신이고, 쿠르트 발트하임(1986~1992년 재임) 전 대통령은 UN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루돌프 키르히셴슈페거(1974~1986년 재임) 전 대통령은 외무부 장관 출신이었다.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현 대통령(2017~)은 녹색당 대표다.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은 국가 대표자로서 외교 업무를 수행한다. 정치 안정을 유지하며 초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은 대통령이 당파적인 정치에서 벗어나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오스트리아 헌법은 대통령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상황이 권력 행사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단일 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거나 두 정당 연합이 의회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대통령 권력은 약화한다. 그러나 5개 이상의 정당이 의회를 대표하게 돼 연립 정부 선택지가 더 늘어나면 대통령 영향력은 증가한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다당제가 강화되면서 대통령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하인츠 피셔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 제공. 사진=슈테판 요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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