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는 독립 변수가 아닌, 종속 변수입니다." 최근 만난 금융투자 업계 한 고위 관계자가 하소연하듯 말했다. 코스피는 경기 침체 등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원인'보다 '결과'만 놓고 시장 탓만 하는 분위기가 한탄스럽다고 했다. 종속변수는 독립변수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는 변수를 일컫는다.
즉 시장에는 금리, 환율, 경제성장률(GDP), 물가(인플레이션) 등 ▲국내 경제 요인과 주요 대기업의 실적과 배당정책, 투자계획 등 ▲기업 실적, 미국 증시 및 유가·원자재 가격, 글로벌 경기 전망 등 ▲국제 경제 요인, 원화 강세와 약세 등에 따른 ▲외국인의 투자자 동향, 재정 정책 및 경기부양책과 규제 정책 등 ▲정부 정책, 국제 분쟁이나 북한 리스크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 투자자들의 공포나 낙관 등의 ▲투자 심리 등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코스피의 방향성과 변동성을 결정한다. 정부가 연초부터 기업 밸류업을 추진하는데도, 왜 시장이 계속 바닥이냐, 작동 안 하냐 등 운운하는 것은 무지몽매한 것과 다름없다. 지금의 코스피 바닥은 복합적 요인에 따라 한국의 펀더멘털이 취약해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변수들의 영향이 지대하게 미친다면 코스피가 화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국회의 의결로 계엄을 해제한 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계엄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비상계엄 영향으로 이날 코스피는 -1.97%, 환율은 1418원으로 출발했다. 조용준 기자
그렇다면 현재 우리 증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일까. 외국 자본이 공매도를 급작스럽게 금지하는 등 한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자본시장 정책을 지속적으로 꾸짖고 있는데, 이번에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3일 밤 느닷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전격 선포로 국내 금융시장이 융단폭격을 맞았다.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등 원화 등 한국 자산의 가치가 급락했다. 1440원까지 상승했는데, 이 같은 급등은 비상계엄 선언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증가와 투자 심리 위축에 따른 결과다. 가상자산 가격도 급락하면서 코인 시장 역시 패닉 그 자체였다. 비트코인은 개당 1억3400만원에서 8800만원 선까지 30% 이상 급락했다. 증시의 변동성도 컸다. 코스피200 야간 선물옵션 지수는 3% 이상 급락했다. 뉴욕 증시에서는 한국 던지기가 펼쳐졌다. 뉴욕 증시 개장 직후 한국 관련주가 일제히 매도세에 휩쓸렸고 계엄 해제 소식이 전해진 후에야 낙폭이 줄었다. 이렇듯 비상계엄 선포는 정치적·사회적 불안정성을 반영하는 극단적 조치로 시장에 즉각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느닷없는 선포였고, 2시간30여분 만에 해제되면서 비상 계엄령 선포 이슈가 빠르게 해소됐지만, 경제적·정치적 불확실성을 심화시켰고 한국 자본 시장의 대내외 이미지와 신뢰도를 추락시켰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시장에 유독 각별한 애정(?)을 쏟아부은 대통령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만든 작품이다.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1980년 1월1일 코스피 지수가 계산되기 시작한 이래로 비상 계엄령이 발표된 적이 없었다. 과거 데이터를 가지고 향후 주식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탄핵 정국의 시나리오도 펼쳐지고 있는 등 한국 고유의 정치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태이기 때문에 증시 변동성 확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알 수 없다. 정부가 금융 시장 안정화를 위해 대응하고 있지만, 한국 자본 시장의 신뢰 회복은 아주 머나먼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은 채 글로벌 스탠더드와 발맞춘 선진 자본정책을 추진해야 한국의 펀더멘털이 강화되며 신뢰가 제고된다. 자본 시장이 '정치 리스크'를 벗을 때 한국 증시의 추운 겨울이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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