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배달업계, '상생 주도권' 경쟁 나서야

김철현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김철현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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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번까지 9차에 걸친 회의에도 수수료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 완화를 위해 지난 7월 출범한 상생협의체는 석 달 동안 공회전만 거듭, 수수료 인하와 관련해선 여태껏 빈손이다. 내달 4일 다시 만나 논의하기로 했지만 합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배달플랫폼 이용으로 인한 부담이 다소는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영세 입점업체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생협의체를 꾸려 10월까지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정부도 체면을 구겼다.


상생협의체는 입점업체 단체뿐만 아니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끼리도 합의해야 하는 구조였다. 참석자들은 배달 앱 간의 입장 차이가 컸던 것이 결국 합의안을 만들지 못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업계 1, 2위인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서로 ‘네 탓’만을 하며 부딪쳤다. 입점업체 측의 주요 요구사항은 수수료 등 입점업체 부담 완화 방안, 소비자 영수증에 입점업체 부담항목 표기, 배달플랫폼 멤버십 혜택 조건 변경, 배달기사 위치정보 공유 등 4가지다. 배민과 쿠팡이츠의 의견이 엇갈린 것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수수료 부담 완화 방안이다.

배민은 이달 들어 8일 열린 6차 회의에서 처음으로 수수료율 인하를 담은 상생안을 제시했다. 매출에 따라 우대 수수료를 적용하는 ‘차등 수수료’ 방안이다. 매출액 하위 40%인 업주에 기존 수수료율인 9.8%보다 낮은 2∼6.8%의 차등 수수료율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매출이 큰 다수 업체는 전혀 부담이 줄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자 배민은 쿠팡이츠를 좀 보라고 했다. 자신들은 그나마 실제 수수료 인하안을 내놨지만 쿠팡이츠는 책임을 미루며 구체적인 상생안을 제시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것이었다.


쿠팡이츠는 음식 배달 사업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막대한 이익을 내는 배민과 입장이 다르다는 항변이었다. 마지못해 배민이 안을 내면 따라가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쿠팡이츠는 지난 23일 열린 8차 회의에서 수수료율을 9.8%에서 5%로 내리는 상생안을 내놨다. 하지만 수수료를 인하하되 입점업체의 배달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조건을 넣었다. 수수료 인하만을 보면 입점업체들 요구를 수용한 것이지만 배달비를 따져보면 받을 수 없는 안을 내놨다는 평가였다.


수수료율 구조, 배달비 책정 방법 등 배달 앱 간 이견이 생기는 부분은 서로의 이해가 얽혀 있는 데다가 복잡다단해 주문만 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시장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은 결국 ‘누가 주도권을 잡는가’이다. 후발 주자인 쿠팡이츠는 점유율 확대를 위해 배달원이 한집에만 배달하는 단건 배달부터 최근의 무료배달까지, 기존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서비스를 밀어붙였다. 배민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쿠팡이츠에 대응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입점업체를 통해서만 수익이 날 수 있는 배달 앱의 구조상 경쟁에 돈을 쏟으면 결국 수수료 인상이 뒤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간과하고 있는 것은 입점업체가 없으면 수익을 낼 방법이 없다는 바로 그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어쩌면 상위 배달 앱들은 지금껏 주도권 경쟁에 매몰돼 거위의 배를 갈라왔다. 합의 실패로 향후 입법을 통한 수수료율 규제 가능성이 커진 지금, 이제라도 시장의 지속성을 위해 ‘상생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김철현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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