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대문 종합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한다. 동대문 종합시장은 1970년에 개관한 의류 재료 전문상가로, 1960년대 한국의 의류 제조업이 급속도로 팽창하던 시절 의류 원단과 부자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며 함께 성장한 곳이다. 하지만 이후 중국의 도매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e커머스가 발달하면서 동대문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차 줄었다. 그런데 54년 된 동대문 시장에 다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크록스 꾸미기, 키링(열쇠고리) 만들기, 비즈팔찌 만들기 등이 인기다. 꾸미고 꾸미고 또 꾸미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동대문은 부자재 쇼핑의 천국으로 불린다. ‘나만의 물건’을 만들고 싶어하는 Z세대가 보물찾기 하듯 시장 곳곳을 누비는 것이다. 이처럼 피자에 토핑을 추가하듯이, 기성 상품에 나만의 독창성을 쌓아 올리는 소비자와 이러한 소비가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토핑경제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평균적인 소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개별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싶어한다. 기본적인 제품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추가 요소를 삽입하여 나만의 취향을 반영하는 토핑경제의 면면을 살펴보자.
토핑경제의 첫 번째 현상은 맞춤형 제품의 인기다. 예를 들어, 휠라에서는 개인별 취향과 족형을 고려한 테니스화 커스텀 서비스를 지원한다. 자신이 원하는 테니스화 모델을 고른 다음, 내 발에 맞는 핏을 선택하고, 자주 이용하는 테니스 코트의 바닥 면까지 고르면 된다. 그뿐만 아니라 테니스화의 전면·측면·신발끈·밑창 등 각각의 색상까지 조합할 수 있어 진정한 나만의 테니스화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안경 브랜드 ‘브리즘’은 약 1시간에 걸친 일대일 상담으로 내 눈에 맞는 최적 안경을 찾아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3D스캐닝과 3D프린팅을 기반으로 얼굴 모양, 미간 너비, 코 높이, 귀 높이 등을 고려해 65만가지 조합 중 개인의 얼굴에 딱 맞는 최적 조합을 찾아준다. 이러한 브리즘의 맞춤 노하우는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최근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두 번째 현상은 나만의 조합을 찾아내는 꾸미기 시장의 성장이다. 2024년 미국의 Z세대들 사이에서는 텀블러 꾸미기가 화제였다. 텀블러 꾸미기의 중심에는 스탠리 텀블러가 있다. 텀블러에 끼우는 아기자기한 빨대 마개는 물론이고, 음료와 함께 먹을 간식을 담을 수 있는 ‘스낵 링(링모양의 접시)’과 텀블러 전용 가방 등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 ‘아마존 스탠리 필수품’으로 불리며 인기가 뜨거웠다. 꾸미기 열풍은 국내 패션업계도 뒤흔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젠틀몬스터는 블랙핑크 ‘제니’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기존 선글라스에 참(charm)을 탈부착할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신상품을 출시해 화제가 되었다. 해당 제품은 진주나 리본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귀여운 동물 인형까지 선글라스에 부착할 수 있는 다양한 참을 선보였는데, 출시되자마자 SNS상에서 인기템으로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모듈형 소비의 부상도 토핑경제의 모습 중 하나다. 요즘 소비자들은 구매 이후로도 지속적인 변화 가능성을 열어놓길 선호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는 하나인데 시곗줄은 종류별로 구비해두고 원할 때마다 갈아 끼운다. 운동 갈 때는 땀이 나도 쉽게 씻어낼 수 있는 스포츠 전용 스트랩으로 바꾸고 중요한 식사 자리에 갈 때는 가죽 스트랩을 착용한다. 일명 ‘줄질’이라 불리는 소비법은 시계 본품에 비해 저렴한 스트랩으로 부담 없이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묘안이다. 이러한 조합 방식은 가구 시장에서도 인기다. 예를 들어, 일룸에서는 소비자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함께 변화하는 침대 ‘쿠시노 코지’가 일명 ‘국민템’으로 불린다. 신혼부터 침대로 사용하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싱글 침대를 하나 더 구매해 옆에 붙이고, 침대 가드 및 풋보드 등 다양한 옵션을 추가 설치해 안전한 패밀리 침대로 변형해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듈형 가구는 소비자가 라이프스테이지에 맞춰 공간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그렇다면 토핑경제가 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소비가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는 개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토핑은 남들과 똑같은 소비를 지양하고, 개인적인 요소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다.
또한 생성형 AI 기술이 고도화되며 무한한 토핑경제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뷰티업계에서는 AI를 기반으로 피부톤에 맞는 최적 상품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필수다. 일례로 아모레퍼시픽의 ‘톤워크’에서는 AI가 개인별 피부톤을 진단해 소비자가 자신에게 딱 맞는 최적 컬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최근 론칭한 ‘덕히알엑스’ 또한 스마트폰 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해 AI가 즉각 피부상태를 진단하고, 4만8000가지의 솔루션 중 적합한 스킨케어와 루틴을 제안해준다고 한다.
토핑경제의 부상은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한 이후에도 계속 해당 브랜드를 찾고 소비하게 만듦으로써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기업은 다양한 토핑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소비자가 상품을 재해석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우리의 상품을 완성하는 것은 소비자가 맞춘 마지막 퍼즐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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