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납토성에서 백제인의 놀라운 축조와 토목 기술이 확인됐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17일부터 이틀간 서성벽 복원지구에서 발굴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설명회를 한다. 조사단은 2017년부터 왕성 축조 과정과 토목 기술을 확인해왔다.
풍납토성이 위치한 한강 변은 수로와 육로가 연결돼 입지적 여건이 좋다. 그러나 배후습지(背後濕地)라서 홍수, 범람 등에 취약하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백제인은 자연제방(홍수나 범람으로 모래와 자갈이 가장자리에 쌓이면서 생긴 둑)을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한강 변 아래에는 자갈층과 부엽층을 깔아 축조 기반을 마련했다. 부엽층은 흙을 쌓아 올리기 전에 갈대, 초본류, 나뭇가지, 식물섬유 등 유기물을 보강재로 삽입해 형성한 층이다. 배후습지나 연약지반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백제인은 왕성의 기초를 다지며 의례 행위도 했다. 서성벽 기반 층에서 의례에 사용된 지진구(地鎭具), 서문지에서 동물 유체를 공헌물(貢獻物)로 매납(埋納·의도적으로 땅에 묻거나 숨기는 행위)한 자취가 다수 발견됐다. 지진구는 건물을 짓기 전 안전을 빌기 위해 봉안하는 상징물, 공헌물은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에게 바치려고 남긴 물건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왕성의 성공적 축성을 기원하고 대규모 공사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의례였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발굴조사에선 길이 2.5m 이상인 장목주(長木柱)도 나왔다. 건물을 받치거나 버티는 데 쓰는 굵고 긴 나무로, 현대 건축물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구조적 안정성을 위해 사용되는 H빔(강철기둥)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레 3.8㎞ 이상의 성벽에선 판괴를 만들기 위한 판축 구조물이 다양하게 확인됐다. 판축이란 장방형(평면 직사각형) 틀 안에 일정한 두께의 물성이 다른 흙을 교대로 쌓아 올려 다지는 행위를 뜻한다. 쌓아 올린 흙덩어리를 판괴라고 하는데, 이를 앞뒤와 좌우로 계속 붙여 나가면 성벽이 완성된다. 연구소 관계자는 "백제 한성기 토목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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