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삼성전자는 고객마인드를 갖고 있나

[시시비비]삼성전자는 고객마인드를 갖고 있나 원본보기 아이콘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3분기 잠정실적과 함께 내놓은 사과문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은 ‘고객’이었다. 전 부회장은 본인 명의의 성명에서 심기일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는데, 그 대상으로 임직원, 투자자와 함께 고객을 포함했다.


‘고객’이라는 단어를 눈여겨본 건 실적 발표 이전, 사석에서 만난 국내 대학 반도체 전공 교수의 위기 진단 영향이 컸다. 이 교수는 이미 삼성전자가 위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그 원인으로 ‘고객의 외면’과 ‘폐쇄성’ 등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자체 생태계 구축’ 같은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와 고객이 원하는 걸 소화하지 않는 게 삼성 위기의 본질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의 평가는 지난해 삼성전자 기술자문단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현재까지 자문단 일원으로 기술 공정상 회사 측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를 듣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 이해도가 생각보다 낮다고 여긴 순간이 있다고 했다. 그가 고객 입장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자 삼성전자 참석자는 "고객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교수는 "삼성전자에 대해 가장 실망한 답변"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삼성이 고객 관점이 아닌 자사 기술력만 과신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삼성전자가 자체 진단한 반도체 기술력은 고객 문제와 비교하면 작아 보일 정도다. 오히려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1㎚=10억분의 1m)

파운드리 양산에 성공해 주목받은 바 있다. GAA는 공정 미세화의 한계를 넘어선 최첨단 기술이다.


하지만 3나노(㎚) 고객 유치에선 경쟁사인 대만 TSMC에 밀린다. 지난해 4분기 TSMC의 3나노 매출 비중은 전분기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5%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 매출비중은 전체 공정의 10%를 밑돌았다. 애플 같은 대형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한 게 결정적인 이유인데, 고객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전 부회장 사과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고객’은 있지만 이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들에겐 "기회가 될 때마다 활발하게 소통하겠다"고 명시했다. "전통인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를 재건하겠다"는 대목은 임직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기술과 품질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고객 입장으로 보긴 힘들다.


반도체 시장 지형은 과거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고객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위 ‘커스터마이징’이 잘된 메이커가 생존에 유리한 구조가 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2분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이 TSMC 62.3%, 삼성전자 11.5%로 평가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유연성이 이런 격차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기술력이 높아도 고객이 외면하면 그 기술은 제품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마련이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을 공개한 자리에서 "최신 칩 생산에 TSMC 외에 다른 칩 제조업체를 사용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고객이 등을 돌린 순간이 삼성전자 위기의 시작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