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디어 시장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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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디어 시장은 위기다. 글로벌 플랫폼의 압도적 공세 속에서 미디어 산업은 혼돈에 빠져 정확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이제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을 하청화하고 있다. 이 같은 위기는 단순한 부진이 아니라 국내 미디어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지난주 막을 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은 영화제 시작 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영화의 간판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까지 맡아 더욱 화제를 모은 영화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추고 있어 아시아 최대 규모 영화제 개막작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에 제작자를 구하지 못해 위기를 겪다가 2020년부터 한국 영화에 투자를 시작한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사극 장르에 300억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

그러나 영화제가 끝난 지금 부산국제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많은 관객과 영화인들은 “어떻게 부산국제영화제가 극장을 잡아먹고 번식하는 넷플릭스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할 수 있느냐”며 항의했다. 문화체육부의 오락가락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영화제를 상징하는 개막작 ‘전,란’은 극장 상영 후 2차 시장 공개까지 일정 기간 유예하는 홀드백조차 없이 영화제가 폐막하는 날 바로 OTT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넷플릭스가 해외 자본이라는 사실이 거부 반응을 더욱 키운 측면도 있다. 티빙 같은 국내 OTT라면 반대 목소리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은 둘로 나뉘었다. “개막작부터 프리미어 상영, 대형광고까지 OTT 판이 된 부산국제영화제는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비난과 “시대의 흐름인 OTT를 끌어안고 파격과 도전 정신으로 관객에게 다가섰다”는 긍정적 평가.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OTT 시리즈뿐만 아니라 웹툰, 게임 등 거의 모든 영상 관련 콘텐츠를 선택했다. 필름마켓을 ‘콘텐츠 앤 필름마켓’으로 이름을 바꿨고 AI 관련 프로그램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초대했다.


감독 출신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의 선택은 대중성과 다양성이었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것은 세계 영화제의 공통적 추세이며 대중이 즐기지 못하는 영화제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란’을 연출한 김상만 감독도 “이제는 스크린의 사이즈보다는 높은 퀄리티,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형식의 표현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콘텐츠보다 중요한 것은 없음을 강조했다. 티빙 구독자가 비구독자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본다는 통계가 있다. 종이 신문과 온라인 뉴스의 상호관계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표 미디어 기업 CJ ENM은 영화제 기간 중 ‘CJ 무비 포럼’을 열었다. CJ ENM의 콘텐츠 전략을 공유하고 K-콘텐츠 산업의 미래 성장 전략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극장과 영화투자사, OTT 사업자와 드라마제작자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윤상현 CJ ENM 대표는 “콘텐츠 제작에 연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며 “IP 경쟁력을 극대화해서 글로벌 IP파워하우스로 변신하겠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투자 방법을 밝히지는 않았다.


참석자들은 실망했지만 비난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요리사들이 모여 쿡방을 하는 프로그램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는 시대다. 연간 1조원이 넘는 돈을 K-콘텐츠에 투자하겠다는 CJ ENM. 정부도 관련 산업에 5년간 1조원을 투자한다.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당연하다. 문제는 어떻게 뿌릴 것인가이다.





임훈구 편집부문 매니징에디터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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