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러시아 관세당국에 1000억원 이상 과징금을 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출발한 자사 화물기가 세관 직인을 받지 않고 이륙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최종 판결에서 과징금 부과가 결정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라 거액의 과징금을 납부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향후 러시아 운항이 재개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이유로 러시아 취항을 중단한 상태다.
14일 러시아 법령정보포털 및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KE259편 화물기는 2021년 2월22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던 중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공항을 경유했다. 이 화물기는 셰레메티예보공항을 떠나면서 공항세관의 직인 날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러시아 세관과의 소송에서 최근 패소했다. 지난달 말 러시아 대법원은 대한항공이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세관이 부과한 과징금 41억5800만루블(약 580억원)을 내야 한다는 1심 판결 유지한다고 결정했다. 대한항공이 2022년 부과받은 과징금 83억루블이 부당하다며 상급 행정청인 연방 관세청에 이의를 제기하고 모스크바 상사법원과 러시아 대법원 등에 세 차례에 걸쳐 항소 및 상고를 진행했지만 러시아 법원은 1심에서 과징금을 절반으로 깎아준 것을 제외하면 모두 현지 관세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에 대한항공은 과징금 미납에 따른 부과금까지 별도로 맞았다. 셰레메티예보 공항세관이 추가 과징금 부과를 현지 법원에 요청했는데, 법원이 과징금 미납액의 2배인 83억루블을 추가로 더 내라고 선고했다. 대한항공 입장에선 절반으로 깎은 과징금이 세 배로 불어난 셈이다. 추가 부과금에 대해선 대한항공이 상고를 진행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측은 "러시아의 규범과 절차를 정상적으로 지켰고, 위법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 무리한 법을 적용해 과도한 과징금을 확정한 것은 유감"이라며 "추가 과징금에 대해서는 상고법원에 상고하는 한편 양국 유관 부처를 통해 리스크 경감을 위한 실효적인 노력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통한 대규모 송금이 어렵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벌금을 납부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러시아로 수백억 원 규모의 금액을 시중은행을 통해 송금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향후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풀린 이후를 우려하고 있다. 직항 노선 운항을 재개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인 2022년 3월부터 러시아를 경유하거나 직항하는 노선 모두를 중단한 상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자국에서 낸 과징금 납부를 안 하면 체납, 지연 등에 해당해 노선 재개를 불허하거나 재개된 노선도 운항 중단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며 "심하면 국가 간의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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