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선점에 실패한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신 6세대인 HBM4에 화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내준 뒤 이를 되찾기 위해 일찌감치 HBM4 개발에 착수하며 경쟁력을 강화해왔는데, 저력을 발휘할 시점이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HBM 개발팀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에 드리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인력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HBM 인력을 확대하는 등 조직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HBM 개발팀은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지난 5월 취임 후 두 달 만에 신설한 조직이다. 개발팀장은 손영수 부사장이 맡고 있다. 손 부사장은 D램 제품개발 전문가로 꼽힌다. 개발팀의 주요 미션은 HBM4 시장 선점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이 위기에 빠진 3분기 이후 개발의 고삐를 더욱 당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인력 조정과 조직 개편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도, 내년 하반기 HBM4 양산 목표를 유지하며 개발 로드맵을 수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방침에 대해 "반도체가 여전히 상승 사이클에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대응 방향을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만약 시장이 하락 국면에 있었다면 삼성전자의 겨울은 더욱 혹독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HBM을 중심으로 호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만큼 사업 노선을 급히 변경하기보다는 인력 재배치 수준에서 유연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선 HBM 가격 상승 전망이 삼성전자의 HBM4 개발에 속도를 붙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4분기 HBM 가격은 전 분기 대비 8~13%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AI 칩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다.
또 AMD가 지난 13일 공개한 신형 AI 칩 ‘MI325X’도 삼성전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MD의 MI325X는 경쟁사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인 블랙웰 H200과 정면 승부를 예고하고 있으며, 메모리 용량이 1.8배 더 크고 대역폭은 1.3배 더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엔비디아의 독점 체제가 무너지고 시장 경쟁이 심화된다면 AI 칩에 필요한 HBM 공급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삼성 파운드리 포럼’에서 발표한 로드맵을 통해 HBM4에 ‘코퍼 투 코퍼 본딩(Copper to Copper Bonding)’ 기술을 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이 기술은 반도체 칩의 구리 배선을 직접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기술이다. 절연체 역할을 하는 산화막을 쓴다. 기존의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필름(TC-NCF) 방식을 대체하며 칩 두께를 얇게 하고 전기 저항과 열 발생을 줄이는 데 강점이 있다.
HBM4는 각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패키징 형태로 제공될 예정이며 파운드리 부문도 이에 맞춰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로직다이 생산을 이미 지난해 말부터 준비해왔다. 이는 HBM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로직다이는 HBM에서 D램 스택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며 전기 신호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는 HBM4부터 고객 맞춤형 로직다이 제작을 통해 차별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언젠가는 HBM에서 1위 SK하이닉스를 따라잡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있다"면서 "HBM4에서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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