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가에서 외국인 고숙련 근로자를 상대로 한 취업비자 장사가 늘고 있다. 일종의 가짜 학위를 위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업을 등록, 이민법의 허점을 활용하려는 외국인의 주머니를 노리는 상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교육부 데이터를 인용해 미국 대학원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커리큘럼인 '데이원CPT' 과정을 등록한 외국인 학생 수가 2022년 가을 기준 2만4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2년간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 대학 중 수십곳이 연방 현장실습 규칙을 활용해 이 커리큘럼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며 "대부분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1년 중 몇차례만 직접 출석하면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 커리큘럼의 학생 수는 2010년 837명에서 2017년 1만명을 넘어섰고 1년 만인 2018년 2만명 선을 뚫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전문직, 주재원 등 외국인 취업비자의 발급을 중단하면서 다급히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의 학생 등록이 급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코로나19 시기에는 잠시 주춤해 2021년 1만8600명대로 줄었다가 1년 만에 폭증했다.
커리큘럼을 수강하는 학생 대부분은 미국에서 취업할 때 꼭 필요한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들이다. H-1B 비자는 외국인이 미국에서 단기 체류하며 일할 수 있게 허용한 비자다. 이 비자의 체류 허가 기간은 3년이고 다시 심사를 통해 3년 연장해 최고 6년까지 미국에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H-1B 신규 발급 뿐 아니라 재심사 통과도 쉽지 않은게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이 비자 신청자 수는 44만6000명에 달했으나 8만5000명만 비자 승인을 받았다.
파키스탄 출신의 33세 데이터 애널리스트 A씨는 이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펜실베이니아 내 해리스버그 과학기술대를 통해 H-1B 비자 없이도 미국에서 좀 더 일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MBA를 취득해 초기 3년간 대형 제약회사에서 일했으나 H-1B 비자를 받지 못했고 결국 이 커리큘럼을 찾게 됐다.
A씨는 커리큘럼을 듣는 과정에서 3만달러(약 4032만원)라는 부담스러운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렇지만 2년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벌면서 H-1B 비자 신청을 다시 시도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 비용을 내기로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출신 직장인을 다수 만났고 IT, 제약회사 등에서 일하는 고위직도 있었다고 그는 소개했다. 그는 "(대부분) 그저 더 많은 시간을 벌고 싶어했다. 학위를 받으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해리스버그대는 이러한 커리큘럼으로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여 새 건물을 짓거나 다른 지역에 캠퍼스를 개설하는 등 대학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커리큘럼이 진행되는 2년 중 H-1B 비자를 받아 중퇴하는 학생도 더러 발생한다. 2017년 해리스버그가 내놓은 데이터를 보면 10여년 전 등록한 외국인 학생 중 H-1B 비자를 받고 나서 중퇴한 비율이 절반 이상에 달했다고 한다. 졸업생 A씨도 지난해 H-1B 비자를 받고 올해는 수업을 등록하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커리큘럼 운영 방식이 이민법상 관련 규정 부재로 인해 가능한 것일 뿐 완전한 비자 발급은 아닌 만큼 위험성이 크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버지니아주에서 이민 변호사로 활동 중인 데이비드 글럭먼은 "불가피한 악"이라면서 "사람들이 분노해야 할 부분은 이렇듯 허점을 노린 해결책을 강요하는 이민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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