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본격화된 가운데 전망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경제가 침체를 향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과도한 우려라고 반박한다. 지난주 롤러코스터를 탄 뉴욕증시가 결국 강세장으로 마감하며 숨을 돌렸음에도, 투자자들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침체 우려 속에 약보합으로 지난 한 주를 마감한 뉴욕증시는 이번 주 첫 거래일인 12일(현지시간) 일제히 상승세로 거래를 마쳤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 올랐다. S&P500지수는 %, 나스닥지수는 % 상승해 장을 마감했다. 이른바 ‘블랙먼데이’인 지난 5일 급락했던 뉴욕증시는 6일 반등, 7일 소폭 하락, 8일 재반등, 9일 강보합 추세를 보였다.
지난 5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한 주요 원인은 고용 쇼크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다. 앞서 미 노동부가 공개한 7월 고용보고서에서 실업률이 4.3%까지 치솟자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 우려가 급속히 확산했다. 1950년부터 미국에서 발생한 11번의 경기 침체 중 1959년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중했던 ‘삼의 법칙(Sahm’s rule)’이 발동한 탓이다. 삼의 법칙은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평균치가 앞선 12개월 중 기록했던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 침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는 경기 지표다. 다만 이를 개발한 클라우디아 삼 뉴센추리 어드바이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삼의 법칙 발동 직후인 지난 7일 외신 인터뷰에서 침체 위험을 매우 강하게 느낀다면서도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은 아니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곳곳에서 내로라하는 석학 등으로부터 경기 침체 우려, 연방준비제도(Fed)의 실기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여파로 대규모의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된 것도 시장 혼란을 극대화시켰다.
이후 뉴욕증시는 하루건너 급등락세를 보이며 높아진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8일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줄어들며 노동시장 냉각 우려가 다소 씻기자 투심은 즉각 개선됐다. 하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장 13일부터 연일 공개되는 생산자물가지수(PPI), 소비자물가지수(CPI), 소매판매 등 주요 지표들에 따라 또 한 번 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들 지표는 경기침체 징후는 물론, Fed의 통화정책 향방을 읽을 수 있는 주요 힌트가 될 전망이다. 또한 투자자들은 오는 22~24일 잭슨홀 연례 심포지엄에서 나올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발언도 주시하고 있다. 앞서 이 자리에서 내놓은 파월 의장의 발언들은 시장을 뒤흔들어왔다.
현재 월가 안팎에서 쏟아지는 전문가들의 중론을 취합하면 현시점에서 아직 미 경제가 침체 상태에 접어들 위기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이다. 다만 침체로 향하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냉각 시그널이 확인된 고용지표 외에도 주요 기업실적에서도 소비 둔화 추세가 확인되고 있다. 맥도널드, 프록터앤드갬블, 월트디즈니의 테마파크 사업, 힐튼호텔, 에어비앤비 등이 공개한 2분기 실적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앞서 실적 콘퍼런스에서 일제히 수요 둔화를 우려했다.
신용카드 부채도 사상 최대 규모로 늘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가계신용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기준 미국의 신용카드 부채는 역대 최대인 1조1400억달러로 집계됐다. 연체율도 9.1%로 2011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의 소비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고 가계 부담이 커졌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정치적·지정학적 리스크도 산재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당장 고율 관세 정책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직접 충돌 등으로 중동발 에너지 가격이 뛸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JP모건은 지난 7일 올해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25%에서 35%로 상향했다. 2025년 하반기 경기 침체가 올 확률은 45%로 본다. 이에 앞서 골드만삭스도 경기 침체 예측을 15%에서 25%로 높였다.
금융정보업체 EPFR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7일 투자자들이 정크본드 펀드에서 빼낸 자금 규모는 2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초 이후 최대다. 침체 우려가 시장을 뒤흔들며 자금이 대거 유출된 것이다.
시장의 경계감이 급속히 높아진 가운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이 현재 경기 침체 상태는 아니지만, 침체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경제를 ‘당뇨 전 단계’에 비유하며 체중을 줄이고 식단을 개선하는 등 금리 인하 같은 신속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은 연착륙 성공 확률이 35~40% 수준이라며 경기 침체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다만 현재는 경기 침체에 진입한 상태는 아니라고 밝혔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올해 침체 가능성엔 선을 그었으나, Fed가 당장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소비심리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과도하며, 경기가 여전히 연착륙으로 향하는 경로에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블룸버그 통신에 "경기 침체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침체 우려의 시발점인 7월 고용보고서에 대해선 "끔찍한 고용보고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예상보다 약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Fed 고위 당국자들은 연일 시장 심리를 달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제프리 슈미드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전반적으로 노동 시장은 여전히 건강해 보인다"며 "7월 고용 보고서는 많은 사람이 회복력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지만 다른 많은 지표가 지속적인 강점을 나타낸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는 "경제 상황이 건전해 경제가 안정적이고 신중한 방식으로 금리 정상화 방향으로 부드럽게 이동 중인지 파악할 시간이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침체 여부가 아닌, 시장 심리다. 이전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투자자들이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진 미국의 견조한 경제로 연내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 있음을 우려하던 투자자들은 이제 Fed가 7월에 금리를 내렸어야 했다고 ‘실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주부터 시장이 지표 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심리 탓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착륙(하드 랜딩)과 연착륙(소프트 랜딩) 사이의 벼랑 끝에 있다는 인식은 투자자들이 지표에 과잉 반응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렇게 되면 시장은 매수 심리에서 매도 심리로 전환되고, 남은 레버리지가 줄어들며 주식이 상승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앤드루 홀렌호스트 시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침체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면 대개 경기 침체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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