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최근 집에 도착한 우편물에 깜짝 놀랐다. 변호사 사무실과 로펌에서 두 아들 앞으로 우편물을 보내온 것이다. ‘혹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하는 마음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봉투를 열어보니 ‘우리 로펌을 통해 선하지 보상을 받으라’며 법무법인 등 변호사가 보낸 소송 안내문이 들어있었다. A 씨의 아들이 소유한 토지 위로 고압 송전선이 지나가고 있는데, 한국전력공사에 소송을 내면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자신의 로펌에 사건을 맡겨달라는 내용이었다.
‘선하지(線下地)’는 상공에 고압 송전선이 통과함에 따라 토지 소유자가 사용·수익권을 제한받는 토지를 뜻한다. 고압전선을 설치한 한전이 토지 소유자의 동의나 승인 없이 송전선로를 설치한 경우, 소유자에게 재산상 손실 등을 보상해야 한다.
A 씨는 “어떠한 방법으로 주소와 이름을 알아낸 것인지 무척 불쾌했다”며 “갑작스럽게 변호사로부터 우편물이 왔을 때 심장이 뛰며 온갖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올해 들어서만 총 6곳의 법무법인 등으로부터 소송 안내 우편을 받았다고 한다. A 씨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해당 우?편물과 관련해 민원을 접수한 상황?이다.
A 씨의 자택에 우편물을 보낸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는 A 씨의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이들은 위성지도 등을 통해 고압전선이 지나가는 토지의 위치를 알아낸 뒤, 해당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떼어 토지 소유자인 A 씨 아들들의 이름과 주소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한 로펌의 관계자는 “기존에 선하지 보상을 받은 분들 중에서도 추가로 보상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소송을 통한 권리 구제 방안을 소개하기 위해 우편으로 안내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이런 안내문 우편 발송이 ‘변호사 광고 규정’과 ‘윤리장전’ 등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변호사 징계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제4조에 따르면 변호사는 특정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나 이해관계인으로 예상되는 자에게 동의 없이 방문, 전화, 우편, 이메일, 문자 메시지 송부, 팩스 등의 방식으로 접촉해 사건의 의뢰를 권유하는 내용의 광고를 할 수 없다. 다만 소속 지방변?호사회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가능?하다.
변협 관계자는 “임의로 토지 등기부등본을 떼어 집 주소를 알아내서 소송을 안내하는 우편을 보낸 것이 광고 규정 위반에 해당할지 여부는 변협 법제위원회의 유권 해석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변협 회칙 중 하나인 ‘변호사 윤리장전’에 어긋날 소지도 있다. 현행 변호사법은 ‘지방변호사회나 대한변협 회칙을 위반할 경우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변호사와 예상 의뢰인 간 관계를 규정한 변호사 윤리장전 제19조는 변호사와 사무직원 등이 사건 유치를 위해 명예와 품위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예상 의뢰인과 접촉하거나 소송을 부추기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을 지낸 정형근(67·사법연수원 24기) 법무법인 한미 변호사는 “변호사 광고 규정와 윤리장전 위반에 해당하는지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사가 먼저 예상 의뢰인을 찾아 ‘재산권을 행사하라’며 소송을 부추기는 것은 적절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변호사의 품위를 손상할 위험이 있는 방식으로 소송 수임 질서가 형성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홍윤지, 박수연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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