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에서 XY 염색체(남성을 나타내는 염색체 조합)를 갖고 있으면서 여자 복싱 경기에 출전한 이마네 칼리프(알제리)와 린위팅(대만)이 많은 화제와 함께 논란을 일으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두 선수가 ‘여권(旅券)상 여성’이라고만 할 뿐 염색체와 호르몬 수치 등 생체 정보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XY 염색체를 가졌어도 여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성별 적격성 검사에서 염색체 문제로 실격 판정을 받아 당시에도 성별 기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성별 기준 논란은 단지 스포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도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기준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트랜스젠더의 인권 보호와 성적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해 성별 정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지난 1월 대법원은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시에 성전환수술 지침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대법원의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예규)’ 제6조와 제3조는 성별 정정 허가를 신청할 때 성전환수술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참고사항’으로 두고 있다. 2020년 2월 대법원은 해당 예규를 개정해 성별 정정 허가 절차 시 성전환수술 여부를 기존 ‘조사사항’에서 ‘참고사항’으로 완화해 변경했다.
하급심에서는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성전환자에 대해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2023년 2월 서울서부지법은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성전환자에 대해 “8년간 호르몬요법을 받았고 정신적 영역에서 여성으로 평가됨이 명백하다”며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2022브2). 지난 4월 청주지법 영동지원은 대법원의 성전환수술 예규가, 헌법과 외부 성기 성형을 성별 정정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겠다고 한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2023호기1033 등).
하지만 일부 법원에서 여전히 성전환수술을 성별 정정의 실질적 허가 기준으로 삼아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숙현(52·사법연수원30기)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성전환수술 예규를 참고 사항 정도로 고려하면 좋겠지만 지금 실무에서 여전히 허가 기준으로 삼는 사례가 많다”며 “법원 판단의 일관성을 위해 성전환수술 예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대법원 예규가 성별정정허가 신청의 전제 요건이나 법원의 재판 사항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며 “해당 예규에 대해 다각적인 측면에서 신중하게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요건을 완화하는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 2010년 전후로 세계인권선언과 유엔(UN) 보고서 등 국제인권규범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위한 성전환수술 요구는 가혹한 조치라며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201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성별 정정을 위해 성전환수술을 요구하는 것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트랜스젠더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신체적 온전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선례가 되어 이후 홍콩,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이어졌다.
2023년 2월 홍콩 종심법원은 성전환수술을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요구하는 정부 정책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해 10월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성전환수술을 강요하는 ‘성별 취급의 특례에 관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나아가 일부 국가는 의학적 진단 없이도 성별 정정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스페인은 의료 전문가의 평가 없이 법적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해 3월 핀란드는 의사의 진단 없이 성전환자의 자기 선언을 토대로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벨기에,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포르투갈 등도 자기 선언을 기반으로 한 간소화된 법적 성별 정정 절차를 밟고 있다. 이들 국가는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판단해 결정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성별 정정 간소화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범죄 목적으로 성별 정정이 이루어져 여성 전용 공간을 침해하는 악용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2018년 미국 조지아주 초등학교 여자 화장실에서 트랜스젠더가 5세 여아를 강제 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 스포츠의 공정성 문제도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다. 트랜스젠더가 여성 부문에서 경쟁하는 것이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공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인구(56·25기)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스포츠의 경우 남녀 종목의 구분 기준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며 “복싱에서 몸무게로 체급을 나누는 것처럼 ‘체력의 한계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트랜스젠더의 여성 경기 출전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성의 외형을 가진 트랜스젠더가 여성 탈의실에 들어간다면 시민들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며 “사회가 성소수자들의 성적 자유 결정권을 존중해 준다면 성소수자들도 통합된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성별 정정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악용 범죄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46·35기) 변호사는 “막연하게 일어나지 않은 일로 성별 정정 문턱을 높이는 것은 성전환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성별 정정은 당사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류민희(46·41기) 변호사는 “성별 정정 기준 완화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없다”며 “많은 국가가 성별 정정의 조건으로 성전환수술을 폐지하는 추세가 이를 방증한다.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우리나라도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영, 이순규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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