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항공사(HSC) 에어프레미아의 문보국 각자대표가 돌연 사임하면서 배경을 둘러싸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미주 노선을 취항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주목받았는데, 성장기를 함께 한 문 대표가 물러난 것은 숨어 있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에어프레미아는 지난 8일 문 대표 사임을 결정하고 다음 날 모든 결재라인에서 배제할 것을 사내 공지했다. 에어프레미아는 지난주 보도자료에서 "문 대표가 사임하고 고문으로 보직을 옮긴다"면서 "사업계획에 따라 핵심과제를 재수립하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는데, 결과적으로는 자발적인 사의가 아니었던 셈이다.
실적만 놓고 보면 문 대표가 밀려날 이유는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이후 뚜렷하게 개선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3751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605% 늘었고 영업이익은 186억원으로, 2017년 창사 후 첫 흑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됐다는 배경이 실적 호조에 큰 역할을 했지만 정상화로 이끈 공로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항공업계에선 즉각 결재라인에서 배제하는 강력조치가 경영진 내 의견 충돌이 누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오너인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과 대한항공 출신 유명섭 각자대표와 달리 문 대표는 스타트업 출신이다. 그는 항공사 경영 방식을 두고 김 회장 등과 시선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IT와 플랫폼 중심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추진하면서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 익숙한 이들과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1984년생으로 항공업계에 드문 40대 경영자였다. 제주 출신으로 서울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2013년 여행·레저 전문 스타트업 ‘레저큐’를 창업했다. 레저큐를 야놀자에 2018년 매각한 대금을 활용해 에어프레미아 설립 초기부터 1%대 지분을 보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사모펀드(PEF) JC파트너스가 에어프레미아의 경영권을 인수할 당시에도 주요 출자자(LP)로 참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김정규 회장과 함께 설립한 AP홀딩스로 에어프레미아에 직접 투자하면서 주요 주주가 됐다. 당시 2대 주주였던 AP홀딩스는 최근 JC파트너스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대표 재직 기간은 일년 정도로 짧았지만 젊은 직원들의 신망은 두터웠다고 한다. 문 전 대표는 집무실을 따로 두지 않고 격의 없이 직원들과 소통했다. 노트북이 든 백팩을 메고 출근해 빈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봤다고 한다. 의사결정 역시 불필요한 보고 체계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진행하는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IT와 데이터 기반 경영을 강조했다. 개발자들을 영입해 소프트웨어 부문 투자를 늘리고 슬랙, 노션과 같은 협업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영업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밀해 수익구조를 다졌다. 기존 항공사에 없던 분위기를 불어넣었다는 반응이다. 회사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항공업계 최초로 직급을 매니저로 통일시키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사업을 추진하는 분위기로 만들었다"며 "데이터를 활용해 성과를 내며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문 전 대표가 JC파트너스와 손잡고 지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 회장이 ‘괘씸죄’로 해임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대주주인 AP홀딩스 지분도 김 회장이 더 많고 김 회장의 에어프레미아 지분도 9%로, 지배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에어프레미아는 지난해부터 추진한 1단계 핵심과제 수행을 마무리하면서 올해에는 매출 5000억원 돌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까지 항공기 4대를 도입해 기단과 노선 등 외형 확장을 꾀할 계획이다. 하지만 경영진 교체기를 맞으면서 내부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재 도입이나 IT업계 스타일의 빠른 의사결정 등 경영 방식에서 다소 불협화음이 있었던 걸로 안다"면서 "대표가 교체되면 당분간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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