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이 막바지에 다다른 가운데 한국과 일본, 양국 선수단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국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반면, 일본은 다소 침통한 모양새다.
2024 파리 올림픽이 후반에 접어든 4일 오후(현지시간) 파리 중심에 위치한 코리아 하우스에서 현재까지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메달리스트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참석 선수들이 메달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아랫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사격 양지인, 반효진, 김예지, 오예진, 유도 안바울, 허미미, 김지수, 김원진, 한주엽, 김하윤, 이준환, 김민종, 펜싱 오상욱, 도경동, 전하영, 윤지수.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9일 오전 11시(한국시간) 기준 한국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13개의 금메달을 수확,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를 추가로 획득해 종합 6위에 올라섰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금메달 13개를 기록했지만, 은메달 수는 한국에 1개 모자란 7개를 기록하며 7위에 위치했다.
지난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은 홈 어드밴티지의 영향으로 역대 최고 성적인 금메달 27개를 따내며 종합 3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이번 2024 파리올림픽에 역대 최다 규모인 409명의 선수단을 출전시키며 금메달 20개를 목표로 내세웠다.
일본 언론은 이번 파리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규모가 2020 도쿄올림픽 당시 232명의 60% 수준인 144명으로 줄어든 것을 두고 '침몰하는 한국을 상징한다'고 조롱했다.
앞서 일본 극우 언론 산케이신문의 자매지 '유칸후지'는 지난달 28일 대표적인 일본 극우 인사 무로타니 카츠미의 "파리올림픽 보도가 적은 한국, 선수단은 도쿄 올림픽의 60%, 단체 종목은 여자 핸드볼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무로타니는 이 칼럼에서 "올림픽 개막으로 세계 언론은 자국 선수들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 강국이라고 자부해온 한국 언론은 파리올림픽 동향을 작게만 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선수단 규모가 지난 올림픽에 비해 줄어든 것을 언급하며 "한국에게 파리올림픽은 침한(침몰하는 한국)의 상징"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헝가리를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오상욱(왼쪽)과 구본길이 기뻐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한국과 일본 선수단의 목표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은 반세기 만에 최소 규모인 선수 144명을 파견, 목표 금메달 또한 5개로 축소됐다. 주요 구기 종목인 축구·배구·농구의 출전 실패에 이어 과거 효자 종목이었던 레슬링 등의 부진이 이어지며 현실적 목표를 내세웠다.
반면 영원한 라이벌 일본은 달랐다. 일본은 '역대 최다' 409명의 선수단을 보냈다. 목표 또한 역대 해외 개최 대회 최다인 금메달 20개를 내걸었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포함해 총 55개의 메달을 수확하겠다고 호언했다. 도쿄올림픽의 역대 최고 성적인 금메달 27개, 종합 3위 기록에 이어 파리에서도 신흥 스포츠 강국으로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 4일, 일본 선수단은 중간 평가에서 "여전히 우리의 목표는 금메달 20개"라며 목표 수정 계획이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주요 메달 도전 종목의 경기가 종료된 상황에서 금메달 20개 이상을 달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3위 호주(금 18)와 상당한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일본의 현실적 목표는 한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정도다. 지난 도쿄대회(금 27대6)와 리우대회(12대8)에서 일본은 큰 폭으로 한국을 앞질렀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친다면 런던대회 이후 12년 만의 역전이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 13개, 일본은 7개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는 한국 올림픽 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활(양궁), 총(사격), 검(펜싱)' 종목에서 강세를 보인 한국 대표팀은 올림픽 사상 최초 기록을 대거 작성했다.
1988 서울대회에서도 못했던 양궁 전 종목 석권을 이번 대회에서 달성했다. 역대 최초 단체전 10연패를 기록했고, 대한민국 역대 최초 3관왕이 2명(임시현, 김우진)이나 나왔다. '4.9mm의 기적' 김우진의 개인전 마지막 슛오프는 양궁 역사에 기록될 명승부였다.
사격에서는 역대 올림픽 최고(금3,은3)기록을 작성했고, 한국 남자 펜싱에서는 사상 최초 2관왕(오상욱)이 탄생했다. 펜싱 사브르 단체전 3연패도 이번 대회에서 기록했다. 유도에서는 역대 최다 메달(5개)을 달성해 화제가 됐다. 조영재의 속사권총, 임애지의 여자 복싱은 한국 역대 최초 메달로 국민들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일본은 투기 종목에서 선전했다. 종주국인 유도 종목에서 금 3, 은 2, 동 3을 기록했고, 한국이 부진했던 레슬링에서 일본은 금 2, 동 2를 따내며 6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외에도 기계체조, 펜싱, 스케이트보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한국과 나란히 6, 7위에 올라섰다.
박혜정이 9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2024 아시아역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 경기에서 바벨을 들고 있다. 박혜정은 지난해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장미란 이후 13년 만에 한국 여자 역도에 금메달을 안기며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한국은 태권도와 브레이킹(댄스), 여자역도와 높이뛰기에서 14번째 금메달을 향한 또 다른 역사에 도전한다. 일본 역시 남은 기간에 레슬링과 브레이킹에서 추가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했다. 스포츠 저변 또한 뿌리부터 탄탄하다. 체육 교육이 무너진 한국과 달리 구기 종목과 육상 종목에서 일본이 이룬 발전과 성과는 눈부신 수준이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 메달 개수에서는 비등한 수를 이뤘지만, 그 이면에 선수 개개인의 투지와 능력에 기대고 의존하는 비중이 높은 대한민국 스포츠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이 스포츠 약소국'이라는 일본의 전망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13개의 금메달을 기록,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2008 베이징·2012 런던 대회의 13개)과 타이를 이뤘다. 남은 사흘간 한국 올림픽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열 네 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은 누가 될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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