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불능 PG사 '루멘' 자금유용 의혹…계열사 '빚더미'

루멘그룹, 6년여 만에 계열사 16곳 거느려
"미니 티메프…부실 계열사 살리기 아닌가"
금감원, 6일부터 관련 업체 현장점검 시작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인 루멘페이먼츠가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가운데 루멘그룹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루멘페이먼츠가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업)계 600억원 규모의 개인간 대출(P2P) 상환 지연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받자 금융당국은 자금 유용을 비롯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련 기업 점검에 나섰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루멘그룹 계열 푸른주택종합건설의 자본총계는 지난해 말 기준 마이너스(-) 13억8142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완전자본잠식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상태를 말한다. 지난해 순손실은 30억7943만원으로 집계되며 적자 전환했다. 루멘그룹은 부동산·건설 사업 확장을 위해 지난해 푸른주택종합건설을 인수했다.

푸른주택종합건설의 감사인은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 “차기(내년)에도 주택 분양이 순조롭게 되지 않아 차입금에 대한 이자 지급이 어렵다면, 대주주 겸 경영자가 계속기업을 위해 차입금 이자를 지급하고 있지만 당사의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에 유의적인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적시했다.


루멘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루멘파이낸셜은 2018년 설립된 카드결제 단말기 제조업체로, 나이스평가정보 기업평가등급은 지난 1일 기준 ‘CCC’ 수준이다. CCC 등급은 상거래를 위한 신용능력이 보통 이하이며 거래안정성 저하가 예상돼 주의를 요하는 기업을 뜻한다. 2020년 설립된 루멘그룹 계열 광고대행 업체인 온오프플랫폼은 2021년 기준 부채비율이 1316%에 이르렀다고 나이스평가정보는 밝혔다. 김인환 루멘그룹 대표는 루멘페이먼츠와 함께 루멘파이낸셜과 온오프플랫폼의 대표직도 맡고 있다.


이들 업체의 모회사인 루멘그룹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루멘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계열사 16곳을 거느리고 있다고 소개하지만, 상당수 계열사 임원진이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동일인들로 채워져 있었다. 금융·투자 관련 일부 자회사는 법인 등기조차 되지 않아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루멘그룹은 루멘페이먼츠 지급불능 사태가 불거지자 전날 오전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지급불능 PG사 '루멘' 자금유용 의혹…계열사 '빚더미' 원본보기 아이콘

이에 루멘그룹이 PG사인 루멘페이먼츠의 정산대금을 유용해 ‘계열사 살리기’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 대표는 2018년 루멘파이낸셜을 설립한 뒤 매년 신사업 출범 및 인수합병(M&A)을 통해 6년여 만에 금융·건설·외식·정보기술(IT)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사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하게 몸집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PG사 자금마저 끌어다 썼다는 의심이 나오는 것이다. PG사가 정산금을 용도 외 목적으로 쓰더라도 현재로선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는 까닭에 이런 의혹에 힘이 실린다.

더 큰 문제는 루멘페이먼츠와 연관된 온투업계 선정산대출 상품에서 투자금 상환에 차질이 생겼다는 점이다. 상환 지연으로 개인간 대출(P2P) 투자자들은 총 6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졌다. 이 상품은 자영업자 등 중소상공인의 매출채권(정산대금채권)에 팩토링업체(선정산업체)를 통해 투자하는 구조다. PG사인 루멘페이먼츠가 선정산업체에 판매대금을 정산하면 선정산업체가 해당 금액을 온투업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해당 투자상품을 운영해 온 온투업체 크로스파이낸스의 곽기웅 대표는 "이번 사태는 미니(작은) 티몬·위메프 사태"라며 루멘그룹 계열사에 대한 정산대금 유용 가능성을 주장했다. 크로스파이낸스는 루멘페이먼츠와 김 대표를 상대로 형사고발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전날 밝힌 바 있다. 온투업계 투자자 A씨는 “루멘그룹은 연관성 없는, 전혀 다른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늘렸는데 단순 사업 확장이 아니라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이 있다”며 “베트남 시장 진출 계획은 자금세탁이나 해외도피를 염두에 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피해 규모와 대금 유용, 위험(리스크) 확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당 사태를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지난 6일부터 PG사·온투업 담당 인력이 현장점검에 나가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위법사항이 있으면 철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루멘페이먼츠 지급불능 사태에 대해 “위메프 건으로 사업에 문제가 있었고 운영자금 부족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