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산운용의 원유선물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560여명의 투자자가 "임의로 특정 월물을 분산·교체하면서 월물 상승률에 따른 이익을 얻지 못했다"며 운용사를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김지혜)는 강모씨 등 투자자 567명이 삼성자산운용을 상대로 낸 약 2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근 투자자들의 패소로 판결했다.
앞서 강씨 등은 삼성자산운용의 원유선물 ETF 상품인 '코덱스(Kodex) WTI 원유선물 특별자산상장지수투자신탁(원유 파생형)(H)'에 투자했다. 이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선물가격을 기초지수로 추종하는 상품이었다. 선물이란 특정 자산을 미리 결정된 가격으로 특정한 시점에 매매할 것을 약정하는 거래로, 미래의 가치를 사고파는 것을 말한다.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국제유가 현물 가격이 곤두박질치자 삼성자산운용 측은 긴급회의를 열어 기존에 보유한 '6월물' 중 일부를 7월 내지 9월물로 '조기 분산'하기로 했다. 6월물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긴급회의 결론에 따라 같은 달 23일 개장 직전 월물분산 조치가 이뤄졌고, 이에 따라 펀드에서 6월물의 구성은 73%에서 34%로 변경됐다. 하지만 실제 가격은 예상을 비껴갔다. 6월물 가격이 7월물, 9월물보다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이후 강씨 등은 "6월물 가격이 오르면서 얻을 수 있었던 투자수익 상당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삼성자산운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투자한 상품은 WTI 선물 가격을 기초지수로 추종하는 패시브(수동형) 펀드다. 투자 계약·설명서에 따라 미리 특정 종목을 정해진 시기와 방법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삼성자산운용은 임의로 월물분산 조치를 했다"며 "분산 조치에 따른 수시공시 의무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들 만으론 삼성자산운용의 월물분산 조치가 계약 및 투자설명서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투자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신탁계약서 내용을 보면 삼성자산운용은 적어도 이 사건 기초지수와 WTI 원유 선물 및 현물 등 관련 상품 중 투자 대상을 고르고 바꿀 재량권을 갖고 있다"며 "펀드 구성이 기초지수 구성과 일부 다르게 됐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기초지수를 추종하지 못하게 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월물분산 조치 당시 시장에서 '6월물 가격의 추가 하락 전망'이 우세했던 점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코로나19로 원유 수급이 급감한 때였다. 5월물 가격이 2020년 2월 말 40달러 이상에서 그해 4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37.63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에 시장에선 6월물 가격이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거나, 심지어 5월물처럼 마이너스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다"고 짚었다.
또한 재판부는 "만약 6월물 비중이 기존대로 73%인 상황에서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면, 사실상 투자자들의 원금 전액 손실 및 상장폐지 가능성도 있던 상황이었다"며 "일부 투자자는 이를 우려해 '조기 월물분산 등 적극적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시의무를 위반했다'는 투자자들의 주장에 대해선 "투자설명서엔 수시공시 사항이 발생한 경우 이를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자산운용이 긴급회의 당일 월물교체를 결정하고 관련 조치를 한 뒤 한국거래소와 홈페이지 등에 조치 내용 및 이유를 공시한 만큼 자본시장법령과 투자설명서에서 정한 수시공시 의무를 지켰다는 취지다.
아울러 재판부는 "실제로 유가가 추가로 떨어졌을 경우 투자자들은 월물분산 조치로 상당한 보호를 받았을 것"이라며 "또한 유가가 실제로 하락했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면 투자자들은 '운용사가 아무런 조치를 안 했다'는 취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자산운용은 앞서 다른 Kodex WTI 원유선물 ETF 투자자들이 비슷한 취지로 제기한 소송들에서도 잇달아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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