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지배구조 재편과 밸류업의 동상이몽

경제계에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상장기업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이 논의는 세제혜택에 대한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하반기에도 많은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회사가 경영 성과를 주주들과 나누는 것은 경영학의 기본이다. 하지만 지금 밸류업에 대한 많은 관심은 그동안 국내 자본시장에서 이러한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주주의 이익과 권한을 찾기 위한 이번 논의가 저평가된 국내 자본시장을 한 단계 나아가게 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 속에 공적연금과 함께 사적연금으로서 배당소득 확대를 선택한 것은 시대적으로도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밸류업과 더불어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법 제 382조 3항에 규정된 ‘이사 충실 의무’ 범위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포함하자는 주장이 핵심이다. 최대주주뿐만 아니라 소액주주의 이익까지 보호하자는 의미로, 국내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앞당길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기업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대주주와 이사회에 대한 소송이나 경영권 위협 등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된 최근 설문조사에서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는 응답이 절반에 달할 정도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기업은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하고 항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탄소중립에서부터 인공지능(AI)까지 전 영역에서 이뤄지는 대전환에 맞춰 지배구조 재편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두산그룹과 SK그룹이 지배구조 재편 작업을 공식화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알짜 계열사를 활용해 신사업에 대한 자금확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두산 은 매년 1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내는 두산밥캣을 매년 적자를 내는 두산로보틱스 의 자회사로 옮기면서 11월 상장폐지를 예고했다. SK 는 지주사에 연간 4000억원 이상 배당을 해온 SK E&S를 분할해 SK이노베이션 과 합친다. SK온과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도 합병한다.


주주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멀쩡한 회사가 갑작스럽게 분할, 합병되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사회가 배임 소송에 걸릴 수 있는 상법 개정 이전에 서둘러 지배구조 재편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지배구조 재편이 최대주주에게 긍정적이고 소액주주에게는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경영자의 선택을 평가하는 것은 단순한 산수가 아니다. 두산의 로봇과 SK의 이차전지 사업이 꽃을 피우는 시기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선택의 결과가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지금 예측하기 어렵다. 주주들이 경영의 불확실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부터가 밸류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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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길 산업IT부 차장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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