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화계사 입구에서 출발해 서울지하철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까지 걷는 7.1㎞가량의 코스다. 시간은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서울시가 지난 4월부터 운영 중인 '서울둘레길 2.0' 21개 코스 중 스무 번째 코스다.
이 코스는 북한산의 강북구를 지나는 구간이다. '묘지 앞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길'이라는 테마를 가진 만큼 역사적 위인들과 일부 문화예술인의 유적이 많아 숲길을 걸으며 조국과 민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의 3코스 흰구름길, 2코스 순례길, 1코스 소나무숲길과 겹치는 구간이다. 지하철역 화계역과 북한산우이역에서 접근이 용이하다.
출발은 화계역 2번 출구에서 한다. 한신대 사거리 방향으로 800m가량 걷다 보면 화계사 일주문이 나온다. 화계사는 북한산 동쪽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 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화계사는 조선 왕가의 원찰이었으며 16세기에 보덕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찰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522년 신월선사가 화계사라 이름을 짓고 창건하였다. 1618년에 화재로 전소된 것을 이듬해 도월선사가 덕흥대원군 이초 가문의 시주를 받아 중건하였고, 1866년 용선과 범운선사가 흥선대원군의 사주로 중수했다.
일주문에 설치된 서울둘레길 인증 스탬프를 찍은 후 우측 등산로를 통해 북한산에 진입하면 된다. 북한산은 예로부터 한산과 삼각산 등으로 불려 왔다. 산지의 정상부와 능선에서는 북한산의 아름다운 장관과 산 아래의 서울시와 경기도 지역을 널리 조망할 수 있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이준열사묘와 광복군 합동 묘소 등이 있는 순국선열 묘역이 나타난다. 이준 열사는 1907년 을사늑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상설, 이위종 등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헤이그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압력과 방해로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1907년 7월 14일 숙소였던 데용호텔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그는 숨을 거두며 "나라를 구하시오. 일본이 끊임없이 유린하고 있소"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의 시신은 헤이그 서쪽 외곽에 있는 니우 에이컨다위넌 시립 공동묘역에 묻혔다가 사후 56년이 되던 해인 1963년 고국으로 운구하여 현 위치에 안장됐다.
순국선열 묘역을 지나면 이내 국립 4·19 민주묘지에 다다른다. 이곳엔 1960년 4·19 혁명 때 희생된 224명이 안장돼 있다. 묘지 경내는 소나무와 향나무, 주목, 단풍나무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기념관과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는 한식 목조건물로 지어졌다. 특히 꽃이 필 무렵 공원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일몰의 풍경도 장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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