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2023년 9월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항공유(SAF)를 이용한 시범 운항을 실시했다. 이 시범 운항은 GS칼텍스가 핀란드 네스테로부터 공급받은 SAF를 이용했다. 사진은 관계자가 당시 시범 운항에 이용한 SAF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대한항공
원본보기 아이콘펄크럼바이오에너지(Fulcrum BioEnergy)는 가정용 쓰레기에서 항공기용 친환경 연료를 생산하는 기술로 지금까지 약 10억달러(약 1조38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BP, 유나이티드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일본항공 등 전 세계 거물급 석유 회사와 항공사들이 이 기업에 돈을 댔다. 국내에서도 SK이노베이션이 260억원을 투자하며 폐기물 자원화 기술을 확보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 5월 1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사실상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2007년 설립한 이 회사는 매립장에서 분쇄한 쓰레기에서 가스를 추출한 뒤 이를 다시 액화해 항공유로 만들겠다는 야심한 계획을 발표했지만 대량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블룸버그통신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10억달러를 유치한 펄크럼이 붕괴 직전 상황"이라며 "청정 연료를 확보하려는 항공 산업에서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한 가지 사례"라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월 펄크럼에 대한 투자를 전액 손실 처리했다.
항공기는 운송 수단 중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를 이동할 때마다 단거리 비행기는 255g의 탄소를 내뿜는다. 버스(105g), 디젤 중형차(171g)에 비해 상당히 많은 양이다. 항공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19년 항공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1.02GT(기가톤)으로 글로벌 탄소 배출량의 약 2.8%, 운송산업 배출량의 13.4%를 차지한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 필연적으로 항공기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관련 국제기구들은 연달아 규제를 발표하고 있다. 유엔(UN) 산하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2021년부터 항공 부문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를 시행하고 있다. CORSIA는 탄소 배출량 기준을 초과해 배출한 항공사에 탄소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해 상쇄하도록 하는 제도다. 2021~2026년까지 자발적 참여 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의무화된다.
2024년 1월 기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26개국이 CORSIA에 참여하고 있다. IATA도 2021년 제77차 총회에서 항공 업계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2020년부터 2050년까지 21.2GT의 탄소 배출량 감축을 통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항공 부문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승용차나 트럭 등 육상의 내연기관차는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 등을 활용하고 있다. 조선은 수소나 암모니아를 이용한 추진선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기는 무거운 배터리로 인해 전동화가 쉽지 않다. 기존 제트 연료와 유사한 수준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1000Wh/㎏의 중량당 에너지밀도를 구현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리튬이온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약 250Wh/㎏이다. 수소연료전지의 경우에도 기존 제트연료 대비 약 4배의 부피가 필요하다.
항공 산업에서 탄소를 저감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떠오른 게 지속가능항공유(SAF)다. SAF는 폐식용유, 사탕수수, 바이오매스, 해조류 등 폐자원을 이용해 생산한다. SAF를 이용하면 기존 항공유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특히 기존 제트 연료와 최대 50%까지 혼합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모든 항공기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IATA는 2050년 항공 부문 탄소중립을 위해 SAF가 약 65%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SAF 사용을 의무화하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4월 ‘리퓨얼(REFuel) EU 항공법’에 최종 합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2025년부터 27개국 전역 공항은 항공기에 급유할 때 SAF를 최소 2% 이상 섞도록 의무화했다. 의무 비율은 2030년에는 6%, 2035년 20%, 2050년 70% 등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프랑스는 2022년부터 자국 출발 항공편은 의무적으로 SAF를 1% 이상 혼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미국은 2030년까지 자국 및 해외로 운항하는 항공기 연료의 10%, 2050년까지 전부를 SAF로 대체한다는 목표하에 ‘2022년 9월 SAF 그랜드 챌린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미국에서 생산 및 판매하는 SAF에 갤런당 1.25~1.75달러의 세액을 공제해준다. 일본은 2030년까지 일본 항공사의 연료 소비량의 10%를 SAF로 대체 의무화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현재 SAF 기술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생산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매우 비싸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IATA는 6월 두바이에서 열린 연례총회에서 2030년까지 필요한 SAF 총량을 5100만t으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에 밝혔던 6300만t보다 큰 폭으로 하향한 것이다.
항공 업계는 현재 기술 및 생산수준으로는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SAF를 공급받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IATA는 올해 SAF 생산량이 150만t으로 지난해보다 3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 항공연료 수요의 0.53%에 불과한 수치다. IATA는 2050년까지 생산량을 1000배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가장 상용화 앞선 HEFA, 원료 확보 제한적= SAF는 기조 제트 항공유에 그대로 드롭인(Drop-in) 방식으로 혼합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현재 SAF 품질 기준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이 미국재료시험협회(ASTM)의 D7566와 D1655 표준이다. 현재 9개 공정 11개 기술이 ASTM의 승인을 받았으며 추가 기술들이 평가 중이다. 이 중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수소화지방산(HEFA), ATJ, 가스화(FT), PTL 등 4가지다.
가장 상용화가 앞선 것이 HEFA(Hydroprocessed Esters and Fatty Acids)다. 이는 폐식용유, 유지 등 동·식물성 지방을 수소 처리해 연료화하는 기술이다. 기존 정유 기술에 시용하는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으며 다른 방식들에 비해 경제적이라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원료 공급이 제한적이고 수소를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상용화에 가장 근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양의 폐식용유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체 항공유 수요의 5% 정도만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ATJ(Alcohol to Jet)는 농림 부산물, 임업 잔류물, 생활 폐기물 등을 발효해 알코올을 만든 후 다시 탄화수소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HEFA보다 좀 더 다양한 원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아직 기술개발이 덜 된 상태다. 옥수수나 사탕수수를 원료로 활용할 수 있으나 식품 자원과 경쟁 관계라는 점이 문제다.
가스화(Gasification)는 ATJ와 마찬가지로 잔류물 및 폐기물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원료를 가열, 분해해 합성가스(일산화탄소 및 수소 혼합물)를 생성한 후 피셔트롭슈(Fischer-Tropsch) 공정을 통해 탄화수소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원료 비용은 저렴하지만 원료를 처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설비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 단점이다.
PTL(Power to Liquid)은 그린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합성해 탄화수소를 만드는 기술로 이퓨얼(e-Fuel)이라고도 한다. 그린 수소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하고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가장 친환경적이다. PTL은 초기 기술 개발 상태이며 다른 공정과 비교해 고가이다. PTL을 이용한 연료 가격은 기존 화석 연료 대비 8배 비싸다.
항공 부문에서 필요한 SAF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서는 HEFA 외에 다른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IATA는 "HEFA가 향후 5년간 SAF의 80%를 차지할 것"이라며 "농업 및 임업 잔류물, 생활폐기물 등 다른 인증 기술들을 활용해 SAF 생산을 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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