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그 자체만으로 기쁨을 준다. 몸이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 그것은 닫힌 공간을 벗어나 열린 세계와 만나는 일이다. 집 안에서는 집에 있는 공간만큼만 감각하지만,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 감각은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열린 거대한 공간을 감각하며 산뜻하게 깨어난다. 그렇게 열린 공간을 걷다 보면 문득 나라는 작은 존재가 거대한 세계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산책의 묘미는 걷는 데 있다. 잠깐 걷는 것을 산책이라 하기엔 조금 아쉽다. 한 시간 정도는 걸어야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고 산책한 맛이 난다. 한 시간을 걷는다는 것은 약 5㎞ 내외를 걷는다는 의미다. 이렇게 산책을 하면 알게 된다. 산책을 시작할 때 나의 몸이 꽤 차가운 상태였다는 것을. 몸에 혈액이 원활히 돌지 않아 기계로 치면 가동 중지 상태였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산책하다 보면 몸 전체에 조금씩 온기가 퍼짐을 느낄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손가락 끝이 발갛게 부어오른다. 혈액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멈춰 있던 기운이 점점 생기를 더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손끝 발끝이 더운 열기로 부들부들해진다. 몸 전체에 신선한 혈액이, 기운이 한바탕 기분 좋게 돈 것이다. 한 시간가량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 산책이 선사하는 ‘내 몸의 변화’를 산책자는 감사히 체감한다. 내 몸이 살아 있다는 그 체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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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반 고흐의 수많은 풍경화. 그것은 일상에서 숱하게 반복된 산책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산책을 즐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대지 너머 미끄러져 들어가는 태양의 산란을 음미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그것이 누런 밀밭과 한데 어우러져 황금빛 축제를 여는지 알 수 있었겠는가? 그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초록 불덩이가 되어 활활 타오르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도처에 널린 온갖 미물에 무관심했다면, 싱그러운 잡풀에 취해 날개마저 초록빛으로 물든 나비를 그릴 수 있었겠는가?
-조원재, <삶은 예술로 빛난다>, 다산초당, 1만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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