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 업계에 '세컨더리 붐'이 일고 있다. 지난해까지 역대 1개뿐이었던 1000억대 '세컨더리 펀드'가 올해만 3개가 탄생했다. 한계에 도달한 VC의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벤처투자회사 전자공시(DIVA)와 VC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IMM인베스트먼트와 신한벤처투자, DSC인베스트먼트 등 3곳이 1000억원 이상의 세컨더리 벤처펀드를 결성했다. 결성 시기는 모두 4월 이후다. IMM인베스트먼트가 1200억, 신한벤처투자가 1000억원 규모로 각각 4월에 결성했다. 최근엔 DSC인베스트먼트 가 역대 최대 금액인 3000억원을 모집하며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까지 1000억대 벤처 세컨더리 펀드는 LB인베스트먼트 가 2019년 결성한 'LB혁신성장펀드(1245억원)'가 유일했다. 세컨더리 펀드란 VC나 사모펀드(PEF) 운용사, 자산운용사가 기존에 투자한 포트폴리오를 다시 인수하는 펀드를 뜻한다. 다른 펀드가 만기 안에 회수하지 못한 지분(구주)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중간 회수' 개념이다. 벤처 세컨더리 펀드는 2002년 신한벤처투자의 전신인 네오플러스가 처음 결성했으며, 이후 간간이 조명됐지만,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의존도가 높은 국내 VC 시장에서는 대세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판도가 바뀔 조짐이 보인다.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가(LP)도 세컨더리 펀드에 적극적으로 출자하고 있다. IMM인베스트먼트의 'IMM세컨더리제6호'에는 산업은행, 군인공제회, 사학연금이 주요 LP로 참여했다. 신한벤처투자에는 '신한 Market-Frontier 투자조합'에는 산업은행과 모태펀드가, DSC인베스트먼트의 '디에스씨세컨더리패키지인수펀드제1호'에는 산업은행과 군인공제회, 사학연금, 우정사업본부 등이 참여했다. VC 3곳 모두 1조원 이상의 운용자산(AUM)을 굴리는 대형 VC라는 공통점도 있다.
국내에 세컨더리 펀드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엑시트 방식으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벤처업계의 사정 때문이다. 과거엔 VC 신규 투자가 계속 성장해왔고, IPO 또한 원활했기 때문에 회수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VC협회에 따르면 신규투자는 2021년 7조6802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2년 연속 역성장했다. 지난해는 5조3977억원이다. 2년 전 전성기의 70% 수준이다. 보통 VC 펀드 만기는 5~7년이다. 올해 안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의 결성총액 합계는 총 7조5645억원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IPO와 M&A만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물량이다.
LP 입장에서도 세컨더리 펀드의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상민 건설근로자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CIO)은 "VC들은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다 IPO 시장 역시 좋지 않아 엑시트와 펀드 청산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세컨더리 펀드의 경우 원래보다 수십 퍼센트 할인된 매력적인 가격으로 구주를 사들일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내부수익률(IRR)을 노릴 수 있다"고 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역시 '세컨더리 시장'을 염두에 두고 2021년 이후 3년 만에 VC 출자에 나섰다. 현재 운용사를 선정 중이며 총 200억을 출자할 계획이다. 이 CIO는 "벤처 세컨더리 시장이 활성화된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는 걸음마 단계였다"며 "본격적으로 태동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흐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책지원도 거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소관인 모태펀드는 지난해 모집 분야에서 10년 만에 '일반 세컨더리' 분야를 부활시켰다. 중소형 부문 3곳과 대형 부문 1곳을 출자했다. 대형 부문 1곳이 바로 신한벤처투자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지난해 '정책 지원펀드'에서 벤처 세컨더리에 1200억원을 배분했다. 또한 지난해 12월 중기부는 세컨더리 펀드의 신주 의무투자 규정(신주에 20% 이상 의무적으로 투자)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벤처투자법 시행령을 신설했다. 결성총액 전부를 구주 투자에만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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