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생성AI로 공격 경영하는데…마스크로 매출 채우는 한컴

정부부처 사용 20년 독점 계약 '한컴 오피스'
국내 IT기술 개발 기대했지만…기업에 외면
MS는 생성형 AI 서비스 내놔 큰 호응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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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소프트웨어 기업인 한컴이 위기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 프로그램의 강력한 대항마로 평가받았지만,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할 처지다. MS가 엑셀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를 탑재한 한국어 버전 상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한컴은 지난해 매출의 절반가량을 소방용 마스크 등 본업과 무관한 데서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성형 AI로 거침없는 MS

3일 IT 스타트업계 및 산업계에 따르면 한글과컴퓨터(한컴)가 제공하는 한글 파일 대신 MS 워드 파일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컴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서가 아예 열리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 파일로 바꿔 달라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한컴 소프트웨어 대신 해외에서도 통용되는 MS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MS의 최근 행보는 거침이 없다. 특히 생성형 AI 서비스인 코파일럿(Copilot)을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탑재한 ‘코파일럿 포 MS 365’의 한국어 버전을 출시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코파일럿 포 MS 365로 워드, 엑셀, PPT 등 MS 오피스 프로그램 안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요약, 번역, 정리 등이 가능하다. 오픈AI 홈페이지에 들어가지 않아도 내 업무와 관련된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어 버전 챗GPT 기능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일부 언어 지원이 가능한 버전이 첫 출시됐는데, 이날 한국어를 비롯해 일부 국가 언어가 추가됐다. 국내 기업들이 코파일럿 포 MS 365를 쓰려면 스탠다드(월 구독료 1만6900원)와 프리미엄(월 2만9700원)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MS 팀즈(Teams)를 사용하는 조직 구성원들의 회의한 녹취록을 정리·요약할 뿐만 아니라 회의 내용 중 내 업무와 연관된 사항만 추려서 볼 수 있다. 구성원 간에 주고받은 파일을 코파일럿이 분석해 원하는 내용만 쏙쏙 뽑아주기도 한다. 출처 표시로 신뢰성을 높였다.

코파일럿으로 PPT 슬라이드 만드는 일이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를 기반으로 PPT 장표가 제작되고 여기에 ‘이미지를 첨부해줘’ ‘좀 더 간략하게 만들어줘’ 등 텍스트로 명령하면 그대로 바꿔준다. 엑셀도 마찬가지다. 엑셀 내용을 분석하는 업무를 비롯해 그래프를 표로 변형하는 등 두꺼운 책을 펴놓고 엑셀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는 명령어를 몰라도, 자연어(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를 입력하면 수행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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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 20년째 정부 시장 독점…뒤처진 AI 개발

MS의 이런 행보는 한컴엔 위기다. 현재 코파일럿은 한글파일을 인식하지 못한다. 생성형 AI 기능을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점점 더 MS와 같은 외산 소프트웨어 생태계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동안 토종 기업인 한컴을 밀어주고 당겨준 정부 부처의 노력이 무색해졌다. 200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과학기술부)는 정부 중앙부처 중 처음으로 한컴 오피스 2004를 업무에 도입했다. 당시 오명 과기부 장관은 국산 IT를 육성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정부 예산으로 한컴과 계약을 맺고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한컴 오피스 활용은 타 부처와 기관으로 확산됐고 지금까지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2024년 현재, 정부와 기업이 한 몸이 돼서 급변하는 AI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사용하는 프로그램부터 다른 실정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AI 투어(Microsoft AI Tour)’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돌아보며 관계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지난달 30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AI 투어(Microsoft AI Tour)’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돌아보며 관계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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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컴 수입의 절반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2711억원이다. 이 가운데 한컴 오피스와 같은 문서기반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상품 매출은 1265억원(47%)이다. 1265억원 중에 수출로 번 돈이 19억원이고 나머지는 다 내수 시장에서 창출했다. 또 전체 매출액의 절반은 소프트웨어 산업과 무관한 소방용 호흡기, 마스크 등 개인안전장비 제조업(1127억원·42%)에서 나왔다.


한컴도 생성형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구독형 오피스 서비스인 ‘한컴독스’에 생성형 AI를 결합한 ‘한컴독스 AI’의 비공개 베타 테스트를 진행했다. 한컴독스 AI는 이력서, 기획서 등 AI 템플릿을 제공하고 주제와 핵심 내용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문서를 생성해주는 기능이다. AI가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문서 생성을 돕는 한컴 어시스턴트는 올해 베타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정식 출시가 언제 될지는 미지수이며, 이미 이런 모든 서비스를 한국 시장에서 상용화한 MS에 비하면 뒤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한컴 관계자는 "한글을 가장 잘 표현하고 다루는 문서 양식이자 프로그램이 한컴 오피스"라며 "올해 하반기 AI 기능을 탑재한 구독형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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