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총선 끝나면 곧바로 여야 정책위의장부터 찾아가 봐야죠. 노동개혁이나 노사 관계에 관심 많은 의원들도 많을 테니 충분히 얘기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한두 번 얘기해서 안 통한다고 그만둘 게 아니라 꾸준히 소통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시계는 한 주 뒤 있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를 향해 있었다. 어느 당 의석이 더 많고 적은지를 가늠하기보단 차기 국회에서 필요한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갈지 벌써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손 회장은 지난 2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대 저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나라가 잘되는 방향,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입법 활동을 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경총은 기업 사용자를 회원으로 둔 경제단체다. 정책이나 제도를 알리는 과정에서 입법부는 물론 직접 카운터파트인 노동계, 나아가 일반 국민까지도 아울러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때마침 손 회장은 인터뷰 전날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저녁식사를 하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주장이 어설픈 수사 탓에 '주 69시간 근로를 조장한다'는 식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제도 개선 논의가 공전했던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겠다고 느낀 계기다. 제대로 실상을 알린다면 우호적 여론을 등에 업고 법·제도를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CEO 처벌 보다는 법인에 벌금형을 부과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기업 유치가 중요한 상황에서 CEO를 범법자로 만드는 건 우리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다음은 손 회장과의 일문일답.
-경총 회장직을 또 맡게 됐다. 소감은.
▲올해도 장기 저성장이 우려되고 총선에 따른 기업 경영환경도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회장직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 경총에 부여된 역할과 정책을 다시 점검하고 보완해서 기업의 목소리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특히 노동시장 선진화와 산업재해 예방, 조세제도 개편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소위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교섭 대상을 원청으로 확대)이 발의됐다가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나올 가능성도 있는데.
▲우리 노동시장은 해고가 매우 어렵다. 선진국 대비 고용유연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파업 시 노동조합이 사업장 점거를 하고 무분별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사용자의 대체근로는 금지된다. 노사 간의 힘의 불균형으로 노사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노란봉투법 내용은 굉장히 큰 퇴보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해 막았다. 또 나온다면 경총이 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께 잘 알려드리는 것이다. 노동 관련법에 대해 국민들께 자세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경총은 대국민 설득에 주력할 계획이다. 언론에도 설명하고, 여러 학교나 기관 쪽에도 포럼 등을 펼치며 설득할 계획이다.
-주52시간제 개편 논의가 진척이 없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정부가 지난해 3월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주 69시간제’로 여론이 왜곡되면서 추진되지 못했다. 마치 고용노동부가 잘못 제안한 것처럼 됐는데 노동법이 사실 굉장히 복잡하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 잘 설득하고 설명해야 한다. 근로시간에서 융통성이 필요한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다. 늘 기업에 수주가 줄 잇는 게 아니다. 이럴 때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 시대에 어느 기업가가 근로자를 혹사시켜서 돈을 벌겠나. 현실적으로 주문량, 업무량이 폭증할 때 업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때마침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데 노사정이 함께 경직된 제도를 풀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과잉입법 지적이 여전하다. 경총이 바라는 개선 방향은.
▲중처법이 전면 적용되면서 안전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기업의 법 준수 부담이 매우 증가했다. 중처법이 2022년 처음 시작된 이후 사고사망자 감소 효과는 크지 않다. 처벌 중심의 정책은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경영자들도 형사처벌 위주의 정책에 불만이 크다.
해외 여러 국가의 제도를 살펴봤지만 우리나라처럼 사람을 구속하는 등 징역 같은 처벌 조항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벌금 등의 방식을 도입한 곳이 많았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사망자 발생 시 경영자 개인은 처벌하지 않고 법인에 대한 벌금만 부과한다.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사전 예방도 더 노력해야 한다. 외국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한국에 오면 전과자가 되기 쉽다고 안 오려는 이들이 많을 정도다. 이런 부담을 좀 덜어줘야 중국에서 빠져나오려는 기업들을 한국에 유치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지난번 산업안전청 얘기까지 정부에서 나왔다가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조직을 설치해 사고예방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사고예방을 위한 전문인력도 늘리고 여러 안전매뉴얼도 많이 배포하고 지도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부 기업이 상속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보단 ‘부자감세’라는 여론이 다소 누그러져 보인다.
▲상속세율은 정말 문제다. 지난주 일본에서 현지 정치인들을 만났는데 이들도 상속세가 많다고 걱정했다. 일본도 부담이 큰데 한국은 더 하다고 했다. 여론을 일으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2년 전과 지금의 분위기가 달라진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상속세 완화에 호응하는 분도 많이 늘었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 수준으로 내리고 과세 방식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유산취득세 방식(실제 취득한 재산에 대해 과세)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도 OECD 평균 수준인 22%로 인하하고,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미국 정부조차 노력 많이 한다. 우리나라도 외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특별세제 할인 등을 늘려야 한다. 경쟁력이 떨어지도록 하면 개방된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일하기 힘들다. 세 부담 완화뿐 아니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도 마련돼야 한다.
-정부도 과도한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규제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킬러규제 혁신, 한시적 규제유예 등 정부 노력으로 현 정부 출범 이후 1700여건의 규제가 개선됐다. 하지만 전통산업 중심의 포지티브 규제, 신산업과 전통산업 간 이해충돌 등으로 여전히 현장에선 주요 경쟁국보다 과도한 규제로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기업집단 지정제, 원격의료 금지, 공유 숙박 금지같이 외국엔 없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가 있다. 경영활동 영역을 사전에 폭넓게 인정하고 과잉·졸속 입법을 막기 위해 의원입법 규제영향 분석을 해야 한다. 이런 활동이 국민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규제개혁이 기업에만 유리한 게 아니라 내수 확대와 일자리 창출로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꾸준히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21대 국회는 과감한 규제개선 등을 희망했던 기업의 목소리 대신 노동권 및 개별근로자 보호 강화에만 집중했다. 노동계 표심을 의식해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유연성 확보 방안에 대한 논의는 없이 주 4.5일제 도입, 정년 연장과 같은 논의를 제안하고 있다.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신 노란봉투법의 재입법 추진까지 예고하고 있어 기업들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의 친(親) 노동행보가 총선 이후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22대 국회는 노사 양측의 의견을 골고루 청취해 노동개혁을 위한 합리적 해법을 찾고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법안을 마련하는 데 합심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 더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노동개혁 완수를 위해 역할을 다해주길 바란다.
대담=최일권 산업IT부장
정리=이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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