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에 발묶인 보조금]①‘WTO 리스크’에 막힌 반도체 보조금…"더 미룰 순 없어"

보조금 지급 시 WTO 제소 가능성 우려
美·日 등 산업 육성에 보조금 투입
"우리만 WTO 규정 지나치게 의식" 지적

반도체 업계가 바라는 보조금 지원이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눈치보기에 가로막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WTO는 공정경쟁 촉진을 위해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고 있는데, 정부가 반도체 업계에 직접적인 금전지원을 할 경우 제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반도체 경쟁국들이 앞다퉈 자국 산업 육성에 돈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우리만 WTO 규정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반도체. 사진=SK하이닉스 제공

반도체. 사진=SK하이닉스 제공

4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보조금 지급 관련 주무 부처들은 보조금을 지급했을 때 생길 수 있는 WTO 리스크를 다각도로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2월부터 코트라(KOTRA)의 해외 무역관을 통해 세계 주요국의 최신 보조금 동향을 조사하고 있다. 동향은 규모와 함께 지급방식에도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면 경쟁국이 WTO에 우리나라를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 보조금은 WTO 회원국들이 정한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에서 공정무역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규정하고 ‘금지보조금’이란 이름으로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WTO 회원국의 보조금 지급 사실을 인지했거나 이로 인해 피해를 받은 국가는 해당 국가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고, 30일 이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이 사안을 WTO 분쟁해결기구에 회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1월1일 WTO 출범 때 가입한 회원국으로 이 협정의 적용을 받는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이른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산업 구조상 WTO로부터 제재를 받으면 경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고 반도체 보조금 지급을 망설이고 있다. 현재 정부는 반도체 기업들에 보조금 지급 없이 시설 투자금에 대한 최대 25%의 세액공제의 혜택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사회에서 WTO 기능이 약화된 점을 고려하고 협정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의 보조금 지급도 가능한 만큼 보조금 지급을 피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금 WTO는 ‘2심 재판’부터는 할 능력이 없는 법원이나 다름없고, 제소해봐야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WTO 제소 카드로 상대국을 압박하기는 어렵다"며 "이미 WTO 주요 국가 미국 등이 WTO 제소 규정을 무시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자국 기업에 제공하는 만큼 정부가 WTO 제소를 의식해 보조금 지원 정책 도입을 미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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