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손실배상 앞둔 홍콩ELS, 금융감독의 책임

[초동시각]손실배상 앞둔 홍콩ELS, 금융감독의 책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공매도 제도개선을 주제로 ‘개인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 직후 그는 예정에 없었던 백브리핑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과 관련한 질의가 나오자 허리를 숙여 사과한 이후 답변을 이어나갔다.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감독당국이 면밀히 하지 못해 고통과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은행·증권사의 신뢰가 훼손된 점도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는 금융감독원 실무자는 물론 금융위원회와 사전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기관의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는 즉자적인 평가가 뒤따랐다.

이 원장은 왜 이 같은 전격적인 행보를 보였을까. 그가 사과하기 이틀 전 금감원은 올해 초부터 2개월에 걸친 은행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한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간을 연장하면서 대대적으로 이뤄진 현장 검사와 민원 조사 결과의 핵심은 ‘은행의 불완전판매’였다. 금감원은 그러면서 판매사의 자율 배상을 전제로 기본배상비율에 투자자 요인을 가감한 ‘분쟁조정기준안’을 제시했다.


공교롭게도 금감원 발표 4시간 후,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의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과거 회장들이 그랬듯 은행산업의 방향성을 공유하는 통상의 간담회로 기획됐지만 관심은 홍콩ELS 배상문제에 집중됐다. 조 회장은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의에 홍콩ELS 사태에 유감을 표시하고 “분쟁조정안 발표는 시장, 소비자, 당국 간 소통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그러면서 은행의 ELS 등 고위험 상품 판매 지속 여부에 대해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서 고객의 선택권이 좁아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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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의 발표내용과 조 회장의 발언 사이엔 묘한 이질감이 교차했다. 이 원장이 검사기간 중 은행의 내부통제시스템의 문제와 ELS 등 파생결합상품 판매 규제를 공연하게 드러낸 가운데 금감원이 선제적으로 은행에 일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한 데 따른 피감독기관 협회장의 고심이 담긴 답변이라는 해석이 이어졌다.

직후 은행권 내에서는 금감원이 제시한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배임’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한 자율배상 이행결과를 과징금, 기관·경영진 제재 등 각종 제재 과정에 정상 참작의 근거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입자들과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는 과거보다 후퇴한 배상안이라면서 “가입자 귀책사유가 터무니없이 많은 금융기관을 편드는 배상안이며, 금감원과 은행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사고를 방치한 금감원이 판사의 역할을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날 선 시각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와 감독기관의 늑장 대응으로 고질적인 대형 금융사고의 ‘뫼비우스의 띠’를 재확인했다. 대내외 신뢰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전격적으로 사과했던 금감원장의 바람과 달리 앞으로 이어질 홍콩ELS 손실배상과 재발방지책 마련 과정에서 각종 분쟁과 갈등의 확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분쟁의 한가운데 있는 홍콩ELS 상품 가입계좌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조8000억원 규모 39만6000계좌다. 이 중 처음으로 ELS에 투자한 사례는 전체의 6.7%인 2만6000계좌,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는 21.5%인 8만4000계좌다.


‘2021년 초부터 줄곧 판매된 금융상품이었으며, 이미 손실이 확정된 상품을 포함해 올해 예상 손실금액만 5조8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초동시각]손실배상 앞둔 홍콩ELS, 금융감독의 책임




임철영 경제금융부 차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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