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트럼프, '관세 위협'으로 협상서 양보 요구…긴급경제법 카드 쓸 수도"

[트럼프리스크②]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 인터뷰

트럼프 2기 출범 시 통상정책 전망
FTA·WTO 규정 따지지 않고 관세 올릴 것
관세 위협,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
IRA 전기차 보조금 폐지·車관세 인상 가능성
美·中, 첨단기술 디커플링 가속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권해영 특파원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권해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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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가 현실화하면 예고한 대로 관세 인상 카드부터 꺼낼 겁니다.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관세를 올리고, 교역 상대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레버리지로 쓸 가능성이 큽니다."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일단 관세부터 올릴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트럼프 2기가 출범할 경우 한국을 우선 타깃으로 하기보다는 전기차 등 자동차 관세를 올림으로써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바이든 행정부보다 심화될 것으로 봤다. 여 전 본부장은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중국과 공급망 분리에 나선 것처럼 첨단기술 공급망에서도 중국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 우리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월 미 대선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1기보다 훨씬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예고하면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국제통상 전문가인 여 전 본부장을 만나 트럼프 2기 출범 시 통상정책 전망과 대응방안을 들어봤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을 지내며 한미 FTA 재협상 등 대미 통상 현안을 담당했던 여 전 본부장은 현재 PIIE 선임위원으로 있다. 다음은 여 전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미국 대선을 앞두고 통상정책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되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되든 ‘미국 우선주의’라는 기본 철학은 같다. 미 역사상 최대의 패권 경쟁국인 중국 견제가 가장 먼저고, 다음이 제조업 부흥이다. 중서부 제조업 기반 상실로 백인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제조업을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이든 대통령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동일하다. 바이드노믹스 대표 정책인 IRA도 제조업 부흥의 일환이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역적자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중국 견제, 제조업 부흥, 무역적자 해소 등 세 가지가 미국 특히 트럼프 통상정책을 관통하는 큰 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모든 국가에 보편관세 10%를 추가 도입하고, 중국에는 60%+알파(α)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장 큰 타깃은 중국이다. 최근 24년간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적자가 누적 17조달러(2경2750조원)에 이른다.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에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는데 가능성은 두 가지다. 60%가 넘는 관세를 실제로 때리거나, 이런 관세 위협을 레버리지로 삼아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또 중국에 부여한 최혜국 대우 자격을 매년 심사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최혜국 대우 적용 시 대중 관세는 평균 3%지만, 이 자격을 철폐하면 30~40%로 뛴다. 미국은 2000년부터 중국의 WTO 가입에 맞춰 항구적·정상적 무역관계(PNTR) 지위를 부여하고 최혜국 대우를 해왔지만, 이전에는 의회가 매년 중국에 최혜국 대우를 적용할지 심사해왔다.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보편관세 10%포인트를 추가 부과하는 방안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FTA 체결국이든 아니든 일단 관세부터 때리고 본다. 이후 예외를 적용받고 싶으면 협상 테이블로 나와 양보안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관세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나씩 관철하는 것이 트럼프식 협상의 기술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관세 인상이 FTA나 WTO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공약이 실현 가능한가.

▲미국의 통상 권한은 의회에 있지만 국가 안보 목적이나 긴급한 경제 위기 시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재량으로 관세를 올릴 수 있다. 실제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1년 무역적자가 심화하자 1917년 제정된 적성국교역법을 기반으로 긴급경제위기를 선포했다. 이후 금본위제를 폐기하고,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10%포인트 인상했다. 당시 대미 무역흑자가 컸던 일본 등과 협상을 시작했고, 결국 일본은 이후 엔화를 17% 평가절상했다. 서독도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했다. 이후 미국은 관세 10%포인트 인상 조치를 철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이 급증하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관련 법(IEEPA)을 근거로 멕시코산 모든 수입품에 5%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었다. 이런 선례에 비춰볼 때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하면 관세 인상 조치는 이뤄질 것이다. 고도의 정치·외교·통상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관세 외에 또 다른 보호무역 수단 도입 가능성은.

▲최근 미 의회 상원에서 해외오염세 법안(Foreign Pollution Fee Act)이 발의됐다.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비슷하다. 미국은 역내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운용하는 EU와 달리 자국 내에서 탄소세를 부과하는 시스템이 없는데도 외국산 수입품에는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또 하나의 관세 장벽이 될 수 있다. 2026년 EU CBAM 시행을 전후해 미국 내에서 논의가 진전될 수 있고 트럼프가 이를 적극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국에 어떤 영향이 예상되나. IRA 폐기도 공약했다.

▲공화당이 행정부와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지 않는다면 IRA 법안을 폐기하거나 완전히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IRA에 포함된 전기차 배터리 분야는 중국과 경쟁하는 미래기술이라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후 대응에 부정적인 만큼 법 폐기보다 재무부 하위규정을 통해 최대 7500달러인 IRA 전기차 보조금 지급 규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

전기차 등 자동차 관세를 올릴 가능성도 예상된다. 트럼프 1기 당시 백악관 관료들을 만나보면 철강에만 25%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당시 논의됐던 자동차 관세 인상도 시행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역적자가 큰 자동차 문제를 손보려고 하면서 한국도 같이 끌려갈 가능성이 있다.


-미·중 관계 악화 시 틈새에 낀 한국의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가속할 것이다. 우리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중국산 부품, 핵심광물, 원재료를 쓰는 것조차도 미국의 규제를 받을 수 있다. IRA에서는 전기차 배터리에 한정돼 중국산 부품·광물 사용이 배제됐지만, 앞으로는 다른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중 공급망을 분리하기 위한 규제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트럼프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업들은 지금부터 글로벌 생산 전략에 있어 트럼프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미국 현지 생산이나 제3지역 생산을 늘리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 정부처럼 대미 로비를 확대하고, 트럼프 1기 경험을 살려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또 미국과 협상은 하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시하는) 다자주의 체제 속에서 여러 국가와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폐기하더라도 생각이 같은 미들파워 국가들끼리 공급망, 기후 대응 등 이슈에서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협력이 가능하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행정고시 36회

▲세계은행(WB) 산하 국제금융공사(IFC) 선임투자정책관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





워싱턴=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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