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승자 없는 고려아연-영풍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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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열린 고려아연 주주총회는 '소문난 잔치'다웠다. 이날 새벽부터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 20여명이 주총장인 서울 강남 영풍빌딩 인근에 진을 쳤다. 한 달 내내 장외에서 날 선 신경전을 벌인 최씨 일가 고려아연과 최대 주주인 장씨 일가 영풍의 대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주총은 1시간 반 내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영풍 측 대리인이 고려아연의 배당안과 정관변경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읽어 내려갔다. 다른 주주들 발언은 없었다. 경비는 삼엄했다. 주총장에 입장하는 주주들에게 "배당안과 정관 변경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주주들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70년 이상 이어져 온 양 가문의 동업 정신이 한계점에 이른 순간이다.

양측은 그간 대놓고 상대방을 비방해왔다. 영풍은 지난달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안건으로 올라온 배당안과 정관 변경에 대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언론에 배포했다. 고려아연도 영풍과 주고받으면서 재차 반박 입장문을 냈고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영풍은 주총 전날까지도 고려아연을 비난하는 자료를 뿌렸다. 고려아연이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조작 의혹에 개입된 사모펀드에 투자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신경전은 주총 당일까지 이어졌다. 영풍이 주총이 끝나기도 전에 정관변경 부결 소식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고려아연은 "상도의가 있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주총은 싱거웠다. 시장 예상대로 배당안은 고려아연 측이, 특별결의라 통과하기 까다로운 정관 변경안은 영풍 측이 원하는 대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되레 커졌다. 영풍그룹 내 두 가문은 한 달 새 상대방 약점을 외부에 알리느라 분주했다. 고려아연이 사모펀드에 투자해 손실을 봤다는 영풍 주장을 접했을 땐 ‘계열사 기업가치를 지킨다는 의리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승자는 없었다. 이번 주총은 장씨와 최씨 집안 75년 동업 역사가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만을 더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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