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덩어리"…의료사고 특례법 환자·의사 모두 ‘NO’ 하는 배경[필수의료 해법]

필수 진료과, 소송 부담 완화 절실하지만
“독소조항 많은 속임수 덩어리 특례법”
“입증책임 있는 피해자나 유족에게 불리”
환자, 의사 모두 "NO NO"

편집자주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대란이 4일로 보름에 접어들었지만 정부와 의료계는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의료개혁의 핵심정책인 ‘필수의료 기피 해법’을 놓고 양측에서 동상이몽 격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함께 제시한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이에 본지는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해법과 관련한 세 가지 키워드(①혼합진료 금지②의료사고 특례법③지역필수의사제)의 핵심쟁점을 짚어보고 선진국 필수 의료 정책 사례도 살펴본다.

①32조 비급여 팽창 통제 고리, ‘혼합진료 금지’ 남은 쟁점은

②핵심 뇌관,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의료주체와 접점 좁혀야

③日은 70년대부터 대책 마련·편재 해소 초점… 韓 제언점은

④‘폐교’ 서남의대 재연 우려…지역필수의사제 실효성 가지려면


정부가 의료현장의 법적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두고 의사단체와 환자단체가 모두 반발하고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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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법은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하면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주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미용 등 비필수 영역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도 피해자가 원치 않을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진료기록부를 조작하거나 CCTV를 촬영하지 않고 폐기할 경우 다른 부위의 수술 중과실이 있거나 환자가 동의하지 않은 의료행위 등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특례 적용에서 제외된다.

소송 부담 완화는 필수 진료과(내과·산부인과·소아과·응급의학과 등) 의사들의 오랜 요구 사항이었다. 의사단체는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병원 내 감염으로 숨진 뒤 담당 의료진 3명이 구속되고 7명이 기소된 사건을 계기로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이 급감했다고 본다.


정부는 필수 진료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더 심해진 이유가 의료진의 소송 부담인 것으로 보고 법적 지원책을 펴겠다는 복안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특례법 제정과 관련해 “환자는 제대로 보상받고, 의사는 소신껏 진료할 수 있도록 소송 위험을 줄여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이 이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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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문가들은 특례법에 대해 제대로 된 당근책이 아니라며 반대한다. 중·상해는 특례 적용으로 기소와 같은 사법 절차가 진행 안 되지만 사망은 면책이 안 돼 공소제기가 가능하다는 점, 한국 의료분쟁 조정중재원 조정과 중재 절차에 참여해야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 보호 조건이 모호하고 범위가 좁아 의사들이 체감하는 정책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반대 입장의 주요 내용이다. 박인숙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독소조항이 매우 많은 속임수 덩어리인 특례법”이라며 “너무 복잡하게 써놔서 누더기처럼 초점이 없고 의사들에게 뭘 해주겠다는 건지 의도가 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보험사 쪽의 편만 들면서 의사의 눈은 가리고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특례법은 의료사고 보험과 관련된 것인 만큼 의료법을 잘 아는 의사와 법률전문가가 한데 모여서 현장의 이야기도 듣고 피해 당사자들의 애로사항도 들으면서 차근차근 만들어야 할 법이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것을 던져놓고 ‘의사 너희들이 우리가 주는 대로 받아. 안 받으면 너희만 손해야’라는 정서가 깔린 상황이라 말이 안 된다”고 일갈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환자들의 억울한 상황만 강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이번 특례법은 정부가 의사들을 달래는 해법 중 하나로 초안을 만들어 내놨지만 실효성도 없고 환자도 반대하고 있어 굳이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겠나 싶다”고 제언했다.


환자단체도 즉각 반발에 나섰다. 피해를 본 환자는 도외시한 채 의사 입장만 반영한 것이란 비판이 나오면서다. 의료사고의 경우 민사 소송에서 피해 입증이 어려워 형사 고소도 함께 진행하는데, 특례법이 제정되면 피해자나 유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해질 거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지난달 29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 제정 추진 관련 전문가·국민 의견수렴 공청회에서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은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고 소송을 위해서는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의료 분쟁에 있어 절대적인 약자”라며 “이런 사람들에게 의료진이 의료사고 발생 경위에 대한 설명, 유감, 사과도 없이 보험에 가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진에 대한 공소 제기 자체를 금지하거나 형사 처벌을 감경·면제하도록 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9년 종합보험에 가입한 교통사고 가해자가 중상해를 입혀도 처벌을 면제해주는 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문혜원 기자 hmoon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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