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나는 심연의 글쓰기를 시도해보지 않았다. 이제라도 내 안의 두려움과 광기를 전면에 내세워서 글을 한번 써보고 싶다. 팔레트에 있는 물감 중에 검은색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면, 이제는 그 색깔에 손을 대보고 싶어진 것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은 이런 식으로 탄생할 테니까. 내 안에 불안이라는 검은색 물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면 그 불안'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불안'에 대하여'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는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못난 것들이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약점들은 나 자신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것들이기에 그저 내 마음을 할퀴는 것들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나는 쓰는 사람이지 않나. 이것을 상기해볼 때 나의 약점은 더 이상 쓸모없는 짐이 아니라 나만의 창작을 위한 훌륭한 재료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약점은 인간의 보편적 약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검은 물감'이다. 작가로서 내가 그 물감으로 글을 쓸 때야말로 인간 존재를 깊이 그려낸 글이 탄생할 것이다.
쓸수록 나는 더 강해졌다. 쓸수록 내 약점이 약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게 약점이란 게 별로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어찌 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자신이 나를 이해해주고 인정해주어야 강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게 인간의 성숙이었다.
그러니 나는 더 적극적으로 내 트라우마, 불안과 공허, 슬픔과 아픔, 우울, 상처와 후회, 부담 등을 물감 삼아 글을 쓸 것이다. 나의 어두움이 같은 어둠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희미하게나마 발 앞을 비춰주는 불빛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보기에 좋은 것만이 예술은 아니지 않나. 추함에도 그것만의 미학이 있듯이 인간의 추악함으로도 글을 쓸 수 있다. 밝은 세계만을 담은 글에는 행간에서 피어나는 신비 같은 것이 없다.
-손화신,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다산초당,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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