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회사가 양심껏 판단해서 해당 인물들에 대한 조치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안 되면 부득이하게 소송을 강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이상현 대표는 30일 KT&G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공익 재단에 자사주를 무상으로 증여한 뒤 그 지분을 이용해 '자기 편'끼리 해 먹는 구조"라며 "KT&G의 주주이익 침해는 그 방법이 과감하고 매우 창의적"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 10일 FCP는 KT&G 측에 '이사 책임 추궁 소 제기 청구서'를 보냈다. 2001년부터 이사회 이사들이 자사주 1085만주를 재단과 기금에 무상으로 증여해 회사에 약 1조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이다. 대상은 백복인 현 KT&G 대표를 포함한 전·현직 사내외 이사 21명이다. 상법에 따라 회사가 이들에 대해 30일 내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으면 FCP는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주가 안정'을 명분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그 주식을 재단에 공짜로 빼돌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며 "재단은 경영진의 실적과 관계없이 가진 지분을 이용해 주주총회 때마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FCP에 따르면 KT&G는 20여년간 산하 재단과 기금 6곳에 출연해 11%가량의 우호 지분을 갖고 있다. 백 대표가 장학재단과 3개 기금을 이끌고 있으며, 민영진 전 대표가 복지재단의 이사장이다. 이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경영진 선임 등에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FCP의 주장이다.
기금과 재단 각각은 지분율 5% 이하로 보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감사보고서 등 공시 자료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FCP는 약 1%의 지분을 가진 주주로서 주주명부 열람을 요구해 이런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십수 년간 감춰왔던 것을 우리가 파헤친 것"이라며 "우호 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기들끼리 돌아가며 세습하는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했다"고 했다. KT&G는 2002년 민영화 이후 대표 4명이 모두 내부 출신이다. 이 대표는 "백 대표의 경우 민 전 대표 시절 '황태자'로 불렸으며, 민 전 대표와 친했던 또 다른 측근이 이미 차기 대표로 내정됐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KT&G는 현재 차기 대표를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 대표는 "주주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기업 공개의 약속"이라며 "KT&G는 주주가 아닌 경영진을 위해 일하는 회사"라고 했다. 그는 "백 대표 재임(2015년~현재) 동안 코스피와 반대로 주가는 하락만 거듭했고 반대로 대표는 업계 '연봉킹'이 됐다"며 "영업이익 역성장에도 연봉을 톱으로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KT&G는 2020년 1조4730억원의 영업이익(영업이익률 29.1%)을 낸 뒤 지속해서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이 하락 중이다. 2023년 영업이익률은 19.4%(영업이익 1조1130억원)로 예상된다. 민영화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률 20% 선이 붕괴할 위기다.
이 대표는 싱가포르투자청(GIC), 매킨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칼라일 한국 대표를 거쳐 FCP를 차렸다. KT&G에 투자한 이유에 대해 "'좋은 회사'가 '싼 가격'에 거래되고, 그 이유가 '거버넌스'인 경우 이를 개선해 주가를 '정상화'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KT&G가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이었다"며 "KT&G는 주주권을 침해하는 경영진, 이 행동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외이사 모두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거버넌스 정상화와 함께 다양한 주주 제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올해 주주 제안은 확정되는 대로 모든 주주께 말씀드릴 계획"이라고 했다. FCP는 지난해 주주 제안을 통해 '분기 배당' 신설이라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얘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주주가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요? 선거에 관심을 가지면 '국민주의'라고 하나요?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학생주의'인가요? 자신이 가진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특별한 사상이나 이념이 아닙니다. 반대의 경우를 '소극주의'나 '귀차니즘'으로 특별하게 부르는 것이 맞는 거 아닐까요?"
한편 이와 관련해 KT&G는 "자사주를 재단에 공짜로 빼돌렸다는 주장과 재단 지분율을 감춰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KT&G는 "회사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함께하는 기업'의 경영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매년 국내 최대 규모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회적 책임 활동을 위해 복지·장학재단 등 비영리법인에 자사주 일부를 출연했으며, 재단은 그 배당금을 활용해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비영리법인에 대한 자사주 출연은 관련 법령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진행했다"며 "비영리법인의 현황과 소유지분 현황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대기업집단현황공시'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자사주 출연 내역 또한 전자공시시스템의 '자기주식처분결과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성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원·부자재 가격 인상 영향으로 수익성이 일부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고, 코스피 대비 주가 하락 지적에 대해서는 "경기방어주 및 배당주 특성상 주가가 코스피 지수와 다른 흐름을 보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최근 3년 코스피 지수가 약 9% 하락하는 동안 회사 주가는 약 9% 상승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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