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금융사고 10년 주기설'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각 은행마다 금융시장 및 회사를 흔들만한 대형 이슈가 10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엔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10년 주기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2014년 주전산기 교체문제를 둔 내홍 이후 10년 만에 큰 어려움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KB국민은행은 시중은행 중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 판매액이 가장 많은 까닭이다.
업계에선 당장 내년 1월 둘째 주께부터 KB국민은행이 판매한 해당 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손실을 볼 고객 규모도 약 5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B국민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의 판매액을 고려하면 역대 최대 수준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KB금융으로선 10년 만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KB국민은행은 2014년 당시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이건호 전 행장과 임영록 전 회장이 집안싸움을 벌이면서 대내외 신뢰도 추락이란 위기에 놓인 바 있다. 이번엔 고객들의 자산에 대한 대규모 손실이 예고되면서 그간 KB국민은행이 쌓아온 '리딩뱅크'라는 대외적 이미지와 신뢰도에 대한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건의 양상은 다르나 이번에도 마주한 현실이 녹록지는 않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판매 잔액은 총 8조4100억원 규모인데, 그중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다. 내년 대규모 원금 손실이 예상되면서 상품 가입자들이 들끓고 있고, 금융감독원 현장 조사를 받는 등 KB국민은행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다.
은행권 금융사고의 10년 주기설은 비단 KB금융만의 일은 아니다. 신한금융의 경우도 2009년 라응찬 전 회장이 신상훈 전 사장을 횡령 혐의로 검찰 고발했던 '신한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양측 간 이른바 '남산 3억원 사건'을 둔 고소·고발전이 이어졌고, 타 금융지주에 비해 탄탄하다던 신한금융 지배구조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최근 신한금융과 신 전 사장 측이 화해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민사소송은 이어지고 있다.
신한금융은 10년 뒤인 2019년엔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또다시 홍역을 치렀다. 업계선 신한금융투자가 '신한투자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한 배경에 이 사건의 여파가 있는 것이 아니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조용병 전 회장은 '주의적 경고'란 경징계를 받고 3연임을 포기한 채 용퇴해야 했다.
우리은행은 미국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후 1조6000억원대 손실을 봤다. 이 일로 투자 당시 우리금융 회장 및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했던 황영기 KB금융 회장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받았다.
우리은행 역시 10여년 뒤 여러 사건사고로 홍역을 치렀다. 2019년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터졌다. 이로 인한 고객 손실만 500억원대에 달했다. 상품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논란이 빚어졌고, 손태승 전 회장은 이로 인해 금융당국으로부터 한때 중징계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징계취소 소송에서 승소했으나 손 전 회장은 결과적으로 연임에 실패했다. 2022년엔 700억원대 횡령사고가 터져 부실한 내부통제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BNK경남은행도 2010년 4136억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 구조화금융부(해체) 소속 직원(부장·과장)들은 고객의 신탁자금을 개인적으로 비상장기업 지분인수 등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자 행장 명의의 지급보증서 등을 위조, 제2금융권·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여 돌려막기 하다 적발됐다.
10여년 뒤인 올해에도 경남은행은 부동산투자금융부장 이모씨(50)가 2007년 1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약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하면서 3000억원대의 자금을 횡령한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직원 상호 간 감시·견제가 미약했던 점, 사고를 일으킨 직원이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고 전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 등 사고의 원인도 판박이란 평가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은행권은 돌아가면서 사건·사고를 겪는데 공교롭게도 그 주기가 대략 10년 단위로 반복된다. 대형 사고 이후 내부정비를 하면 한동안 괜찮다가, 10여년쯤 흘러 다시 또 일이 터지는 식"이라며 "지난해 우리은행이 내홍을 겪고 난 이후 내부단속에 들어가면서 잠잠해졌는데, 올해는 KB국민은행에서 직원들이 미공개정보로 부당이득을 얻는 사건부터 최근 ELS 사태까지 줄줄이 사고가 터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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