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31일 국회를 찾아 정부의 '낮은 자세'를 강조하며 '건전재정'을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섰다. 연설문 초안부터 직접 구상, 이날 아침까지도 윤 대통령이 수정을 거듭한 시정연설에는 집권 2년 차를 맞는 윤 정부의 국정기조와 철학이 그대로 반영됐다. 윤 대통령은 "모든 재정사업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마련된 재원은 국방, 법치, 교육, 보건 등 국가 본질 기능 강화와 약자 보호, 그리고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더 투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건전재정은 대내적으로는 물가 안정에, 대외적으로는 국가신인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내년 예산안의 수립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국내외 경제 상황 ▲건전재정 기조 ▲국정기조에 따른 국내 경제 변화 ▲핵심 국정과제 등 4개 파트를 기반으로 총 21페이지, 글자 수 7492자에 달하는 시정연설문을 준비했다. 이를 통해 윤 정부의 국정기조가 국가 건전재정을 위한 올바른 길임을 수차례 내비쳤다.
우선 "국제적으로 고금리와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평가한 윤 대통령은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그간 부진했던 거시경제 지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민생의 어려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물가가 여전히 높고 고금리로 생계비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물가와 민생 안정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총력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꺼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정부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시장 중심으로의 경제 체질 개선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 정책을 펼쳐왔다"며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금융, 세제 지원을 통해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의 초격차 확보를 위해 힘써왔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준 국회의 관심과 협조에도 감사드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의 내년도 재정 운용 기조인 '건전재정'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자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은 국방, 법치, 교육, 보건 등 국가 본질 기능 강화와 약자 보호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예고했다.
건전재정의 목표가 '복지 정책'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복지 정책의 최우선을 약자 보호에 두고 어려운 분들에게 국가의 손길이 빠짐없이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저는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발달 장애인 1대 1 전담 서비스 제공 ▲자립준비청년 수당 10만원 인상 및 기초·차상위 가구 전액 지원 ▲소상공인 저리 융자 및 냉난방기 구입 비용 500만원까지 보조 등의 향후 세부 지원책도 일일이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시정연설에서 '경제(23회)'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더 두터운 '지원(32회)'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심각해진 경제 상황을 강조해 정부의 건전 재정 기조를 관철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날 건전재정을 수차례 강조하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보에 예산 배정의 중점을 두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원전, 방산, 플랜트 분야의 수주 지원을 위해 수출금융 기관의 자본을 보강해 수출금융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AI(인공지능), 바이오, 사이버 보안,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축에 4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공급망 불안정에 대비하기 위해 핵심 광물의 공공 비축도 늘리겠다"고 밝혔다.
R&D(연구개발) 예산 감축에 대해서는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양적으로는 대폭 증가했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서는 질적인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정부의 예산 조정 배경을 털어놨다. 윤 대통령은 조정된 예산은 첨단 AI 디지털, 바이오,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지원으로 선회하겠다는 기조를 전했다.
윤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의 필요성에도 힘을 실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대한민국 미래와 미래세대를 위한 3대 개혁에도 힘껏 매진해 왔다"며 최근 논란이 된 정부의 연금개혁 발표안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과 80여 차례 회의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축적했으며, 24번의 계층별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국민 의견을 경청하고 여론조사도 꼼꼼하게 실시했다. 이렇게 마련한 방대한 데이터는 국민연금 모수개혁을 포함해 연금제도 구조개혁을 위해 요긴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근 양대 노총의 회계 공시 결정을 언급하면서는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철저히 보장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와 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는 정부의 원칙에 따른 결과물이라 평했다. 그러면서 "노사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와 청년의 미래를 위한 노동개혁에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한미일, 한미, 한일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실질적 경제 이익도 내세웠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부는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안보, 경제, 첨단 기술, 정보, 문화를 망라한 글로벌 포괄 전략 동맹을 구축했다"며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에서 긴밀히 작동하는 한미 경제 안보 협력 메커니즘은 우리의 위기 관리 능력을 더욱 튼튼하게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일 외교 개선에 대해서는 "경제협력과 비즈니스가 이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를 해제했고 한일 간에 화이트 리스트가 복원됐으며 통화 스와프도 재개됐다"며 앞으로 이어질 양국 간 추가적인 경제 협력을 기대했다. 그러면서 취임 후 1년 반 동안 93개국과 142회의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저는 외교의 중심을 경제에 두고 우리 국민과 기업이 뛰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 달려갔다"고 덧붙였다.
정부 및 여야 간 협력도 당부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이 차질 없이 집행돼 민생의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며 "지금 우리가 처한 글로벌 경제 불안과 안보 위협은 우리에게 거국적, 초당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당면한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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