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5차 중동전쟁으로 확산할지 여부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이번 전쟁이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사태처럼 중동 산유국으로 확산할 경우,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할 수밖에 없다. 1974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이어진 오일쇼크는 20세기 최악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기억된다.
9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4.3%(3.59달러) 오른 배럴당 86.38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4월 이후 가장 큰 상승률로, 종가 기준 지난 3일 이후 최고치다. 같은 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88.15달러를 4.2%(3.57달러) 상승했다. 국제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이 원유 생산지가 아닌 점을 고려하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지만, 중동 인접국으로의 확전 가능성에 유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봤다.
일각에선 이번 전쟁이 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1차 오일쇼크 사태처럼 전세계 고물가로 인한 경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차 오일쇼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이집트, 이라크 등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의 무기화'를 선언하고 매달 5%씩 감산하면서 본격화했다. 이 결과 최대 430만b/d(배럴/1일)의 공급차질이 발생해 국제유가는 배럴당 평균 3달러에서 한 달 만에 13달러로 4배 이상 급등했다. 한국은 당시 중동 산유국에 지지 성명을 하며 감산 유예를 받았으나 전세계 석유파동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3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5%에서 이듬해인 1974년 24.3%, 1975년 25.2%까지 치솟았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역시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2차 오일쇼크는 이란 혁명과 이듬해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기인했다. 이란은 혁명으로 인한 파업으로 하루 600만 배럴의 석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까지 축소했다. 국제유가는 5개월 만에 15달러에서 39달러로 2.6배 상승했고, 이 여파로 국내 물가는 1980년 28.7%까지 뛰었다.
특히 2차 오일쇼크 당시 한국은 중화학 공업 육성 시기로 석유 의존도가 높아 경제적 타격이 더 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79년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년 대비 6.1%에서 이듬해 -7.1%로 급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당시 1·2차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 성장률이 각각 5%포인트, 2%포인트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1970년대 미국 소비자물가지표(CPI)가 12~14%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중동 전쟁으로 촉발한 유가 불안이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끼친 셈이다.
문제는 이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다. 코로나19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내 물가가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 이번 중동 사태로 정부의 연간 물가 상승 예상치(3.3%)를 크게 상회할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물가는 지난 7월 2.3%로 올해 들어 상승률이 둔화했다가 8월(3.4%), 9월(3.7%)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로 국제 유가 변동 폭이 확대할 것으로 보고 관계기관과 공조해 상황별 대응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은 "4차 중동전쟁은 산유국인 중동국가들과 이스라엘 간 누적된 전쟁이 핵심이었고, 마찬가지로 이번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배후에 이란 등 산유국이 있다면 사태가 더 커질 수 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사태까지 연결되면서 미국이 가진 중동의 헤게모니가 약화할 경우 에너지 수급에서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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