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비 퍼부어도 땅 고르는 무인굴착기…오지에서도 밤에도 돌아간다

HD현대 무인굴착기
'콘셉트-X2' 국내 첫 시연회
해외 오지·야간작업 가능

20일 충남 보령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22t급 디벨론(DEVELON) 무인 굴착기와 10t급 디벨론 무인 도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땅을 고르고 흙을 퍼 날랐다. 이날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운전석 없는 '콘셉트-X2' 무인 굴착기, 무인 도저 시연회가 열렸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1t급 디벨론(DEVELON) 무인 도저에서 30m 떨어진 곳에 서서 태블릿PC 크기만한 콘솔(조종기)로 도저를 조종하는 모습.[사진=문채석 기자]

HD현대사이트솔루션 1t급 디벨론(DEVELON) 무인 도저에서 30m 떨어진 곳에 서서 태블릿PC 크기만한 콘솔(조종기)로 도저를 조종하는 모습.[사진=문채석 기자]


1t급 디벨론 무인 도저에서 30m 떨어진 곳에 서서 태블릿PC 크기만한 조종기를 움직여봤다. 왼쪽 레버를 올리면 도저가 앞으로 가고 내리면 뒤로 갔다. 오른쪽 레버를 올리면 도저 블레이드(땅 파는 머리 부분)이 상승하면서 흙을 퍼 올렸다. 오른쪽 레버를 내리면 버킷이 내려가면서 땅을 팠다. 홍희승 HD현대사이트솔루션 책임연구원은 "최대 150m 거리에서도 조종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당 40㎜ 폭우 속에서 초보자가 운전해도 기기가 삐걱거리거나 멈춰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인 설비인데 왜 사람이 콘솔로 조종하는지 의문스러웠다. 안전상 이유 등으로 필요하면 사람이 도저를 조종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정확히 말하면 평소에는 현장 책임자가 콘솔로 조종하고 퇴근 후 야간에는 무인으로 돌아간다. 홍 책임연구원은 "콘솔 원격제어는 사람이 진입하기 어려운 위험 지역에서 쓰기에 적합한 기능"이라며 "무인 조종으로는 장비가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유용하다"고 했다.


콘셉트-X2는 무인자동화 솔루션이다. 굴착기, 도저, 휠로더 등 주요 장비에 부착된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와 드론 등으로 주변 지형을 3D(3차원)로 분석해 공정을 제어하는 관제탑이다. 공사판에서 '스마트 팩토리'가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 굴착기가 땅을 팔 때 라이더가 장애물을 비춰주면 종합 관제 기지 엑스 센터(X-Center)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22t급 디벨론(DEVELON) 무인 굴착기 온라인 시연. 시간당 70㎜ 폭우 때문에 밖에서 운전을 해보지 못하고 실내에서 살펴봤다.[사진=문채석 기자]

HD현대사이트솔루션 22t급 디벨론(DEVELON) 무인 굴착기 온라인 시연. 시간당 70㎜ 폭우 때문에 밖에서 운전을 해보지 못하고 실내에서 살펴봤다.[사진=문채석 기자]


이날 시연회 백미인 굴착기 원격제어는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오후 들어 강수량이 시간당 70㎜로 늘면서 안전 문제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 어렵다고 현장에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에서 약 200m 떨어진 실내 작업장에서 22t급 디벨론 캐빈 리스 무인 굴착기 운전을 지켜봤다. 굴착기는 약 10m(아파트 3층) 높이 흙더미 위에 솟아 있었다. 권용철 HD현대사이트솔루션 책임연구원은 "굴착기 작업기에 라이다 센서가 붙어 있어서 실시간으로 지형을 인지하면서 공정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굴착기 버킷 근처에 설치된 IP 카메라를 통해 작은 빗방울을 볼 수 있었다. 실내 작업장에서도 작은 빗방울이 보인다는 것은 굴착기 캐빈 안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공정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이다 센서가 굴착기 작업기에 붙어 있어서 땅이 울퉁불퉁한지, 물기가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지를 파악하고 장애물을 피해 다닐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특히 이번 콘셉트-X2에는 굴착기 버킷에 '틸트로테이터'라는 부품이 달아 생산 효율을 높인 점이 눈에 띄었다. 틸트로레이터는 굴착기 본체가 가만히 있어도 버킷을 360도 수평 회전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부품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 몸은 가만히 있는데 팔이 360도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2019년 세계 최초로 공개한 '콘셉트-X'보다 작업 효율을 13% 개선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22t급 디벨론(DEVELON) 무인 굴착기. 악천후 때문에 밖에서 운전 장면을 보진 못했다.[사진=문채석 기자]

HD현대사이트솔루션 22t급 디벨론(DEVELON) 무인 굴착기. 악천후 때문에 밖에서 운전 장면을 보진 못했다.[사진=문채석 기자]


현장 책임자들은 콘셉트-X2가 일반 제조업 공장 스마트 팩토리보다 훨씬 유용하다고 했다. 대부분 스마트 팩토리는 정해진 공정 속에서 불량품 같은 몇몇 변수만 가려내면 되지만 공사장에서는 언제 어떤 장애물이 튀어나올지, 날씨가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콘셉트-X2 같은 무인 관제 시스템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콘셉트-X2 체계를 밤에도, 오지에서도 얼마든지 돌릴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 해외자원 개발 공사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예측했다. 이를 위해 콘셉트-X2 플랫폼 해외 건설사 수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방침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측과 콘셉트-X2 실증사업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동욱 HD현대사이트솔루션 기술원장 겸 대표이사 사장은 "네옴시티 측에서 회사에 방문해 저희가 (실증사업을) 제안한 상태"라며 "세계적으로 (콘셉트-X2 같은) 무인자동화 솔루션이 상용화된 사례가 없어서 먼저 실증사업부터 하고 안전성과 품질 검증을 받으면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르포]비 퍼부어도 땅 고르는 무인굴착기…오지에서도 밤에도 돌아간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콘셉트-X2가 공사 생산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굴착기 동작 시간당 작업량 기준으로 보면 현재 콘셉트-X2의 생산성은 20년차 이상 최고 숙련자의 90% 수준이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도 장비를 돌리는 '오토노모스(autunomous)' 단계에 도달했다.


김동목 HD현대사이트솔루션 기술원 스마트CE(건설기계) 수석연구원은 "(콘셉트-X2) 오토노모스 무인장비를 투입하면 연료 교체, 정비 시간을 빼도 하루 21~22시간 장비를 돌릴 수 있다"며 "주52시간제 때문에 사람은 하루 최대 8시간만 일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무인자동화 솔루션이 현장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령=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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