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후쿠시마 어민 설득 도맡은 니시무라 경산상

정치 금수저 아니지만 계속해서 중용
경제·에너지 정책 맡아온 아베 정권 인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이후 후쿠시마현으로 이동해 어민들에게 이를 설명할 예정이다."


이번 주 내내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 기사를 쓰면서, 사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보다 더 많이 인용했던 사람이 니시무라 경산상입니다. 한 주 내내 방류 기사를 쓰며 생각해보니, 기시다 총리보다 일본 언론에 니시무라 경산상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니시무라 경산상은 현재 일본 이슈를 따라가는데 그만큼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데요. 오늘은 일본 경제산업성의 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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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우리나라 기획재정부의 역할을 하는 조직입니다. 경제산업상은 이 부처의 수장으로 우리로 따지면 기재부 장관인 셈이죠. 니시무라 경산상은 지난해 8월 취임해 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삶을 거쳐 장관의 자리에 올랐는지 삶의 궤적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니시무라 경산상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생년월일은 1962년생 10월 15일입니다.

기시다 총리처럼 일본 정계에는 집안 대대로 정치를 해온 '금수저'들이 많은데요. 니시무라 경산상은 그런 코스를 밟지는 않았습니다. 효고현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지역에서 오래 시계방을 운영하고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본인 프로필에서도 '시계방 손자, 샐러리맨 장남으로 자랐다'라는 부분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인이 정치 거물인데요. 니시무라 경산상의 장인어른은 후키다 아키라 전 중의원입니다. 딸의 대부를 기시 노부스케 총리가 맡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던 인물이었는데요. 니시무라 경산상의 배우자의 이름 '노부코'는 기시 전 총리가 대부를 맡아서 이름을 지을 때 '노부스케'의 한 글자를 준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오면, 학창 시절에는 육상이나 야구, 복싱부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었다고 하네요. 이후 도쿄대 법학부에 합격하고 옛 경제산업성인 통산성에 들어가 관료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풍력 발전 도입 촉진, 알루미늄 캔 재활용 제도 마련 등 에너지와 환경 분야의 일을 중점으로 해나갑니다.


하지만 그는 통산성 환경입지국 조사관을 마지막으로 관료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퇴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관료가 아무리 힘을 다 해도 결국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일본은 변하지 않는다"라며 정치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죠.


물론 전형적인 정치가 집안은 아니니 정계 진출이 쉬울 리가 없겠죠. 그는 2000년 37세의 나이에 중의원 선거에 첫 도전 했는데, 5400표 차이로 패배합니다. 4년간 다시 정치 기반을 닦아야 했죠.


이후 2003년 열린 다음 선거에서 초선에 성공합니다. 이후 3선을 달성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입후보하게 됐는데요. 3선을 하는 동안 의원 입법으로 환경 분야에 가진 본인의 주특기를 살려 '해양 기본법', '안전 수역법' 등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부흥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원전과 에너지 정책에 대한 여야 토론 수장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2019년 9월에 경제재생담당 장관을 맡고, 내각부의 경제재정정책도 도맡게 되는데요.


코로나19로 일본이 긴급 사태에 빠지자 코로나19 담당 장관에도 임명됩니다. 사실상 요직은 아베 정권 시기에 다 맡은 '아베 사람'이죠.


이력이 후쿠시마 원전 문제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경제산업상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현지 어민 설득 등에 계속 주력했는데요. 일본 정부 내에서 방류 시기 결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무렵에는 주말마다 후쿠시마를 찾아 어민 대표를 만나는 등 설득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보다 이 시기 뉴스에 더 많이 등장했는데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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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베 정권에서 중용된 인물인 만큼 정치적으로는 우파 성향이 짙습니다. 지난 21일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공물도 바쳤죠. 지난해 8월 경산상 취임 직후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했는데, 기시다 내각에서는 첫 야스쿠니 참배로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됐었습니다.


일단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현지 여론 설득에 나서는 임무를 맡고 있어 기시다 정권에서도 계속 요직을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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