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울리고 "산사태" 방송에도 꿈쩍않던 주민, 경찰 출동하자 대피

산림청, 충북 보은에서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
남성현 산림청장 “인명피해 최소화는 필수 과제”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허공을 찌르며, 시골 마을의 적막을 깨뜨렸다. 사이렌에 이어 “마을에 산사태가 예상돼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안전한 장소로 이동 후 안내방송에 귀 기울여 달라”는 마을 이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22일 충북 보은 장안면 장재리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 현장에서 산림청 관계자들이 80대 주민을 부축해 대피소로 이동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22일 충북 보은 장안면 장재리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 현장에서 산림청 관계자들이 80대 주민을 부축해 대피소로 이동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림청은 22일 충북 보은 장안면 장재리에서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은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리면서, 산사태 발생 우려가 높아진 상황을 가정해 이뤄졌다. 이날 훈련은 장재리를 포함한 전국 27개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됐다.

산사태 상황을 가정한 주민대피 훈련이 실시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최근 빈번해진 산사태의 심각성을 주민에게 알리고,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대피요령을 체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훈련 도입의 배경이다.


22일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이 진행된 충북 보은 장안면 장재리 마을 일대 전경. 마을 주택가 뒤편의 산림은 현재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집중호우 시 실제 산사태 위험이 높은 것으로 산림당국은 판단한다. 산림청 제공

22일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이 진행된 충북 보은 장안면 장재리 마을 일대 전경. 마을 주택가 뒤편의 산림은 현재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집중호우 시 실제 산사태 위험이 높은 것으로 산림당국은 판단한다. 산림청 제공


◆신속한 상황 전파와 주민대피= 훈련 상황은 오후 3시를 기해 마을주민의 개인 휴대전화(재난문자)와 각 가정에 보급된 ‘스마트 마을방송 시스템(방송)’을 통해 동시에 전파됐다. 또 훈련주관 기관인 산림청은 5개 지방산림청, 지역 경찰서 및 소방서 등 유관기관과 역할을 분담해 주민대피를 돕는 동시에 재난안전통신망(PS-LTE)으로 시시각각 주민대피 상황을 공유했다.


우선 장재리에선 훈련 시작과 함께 산림청 산사태방지과 및 운영지원과(비상계획 담당) 직원 20여명과 경찰차 2대에 경찰관 5명, 119구급차 1대에 3명의 구조인력이 투입됐다. 각 기관 관계자들은 집 밖으로 나와 갈팡질팡하는 주민을 안전한 대피 경로로 안내하고, 마을 곳곳을 돌아보면서 집을 빠져나오지 않은 주민을 대피시키는 데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집을 나선 주민은 마을 어귀에서 대기 중인 경찰차와 산림청 수송차량에 나눠 탑승해 대피소인 다목적체육관으로 몸을 피했다. 대피하는 과정에선 주민 한 명이 실신하는 상황도 연출됐지만, 현장에 출동해 있던 119구급대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이동했다.


일련의 현장 대피상황이 종료된 시점. 대피소에 차려진 산사태 예방지원본부에선 산림청장이 PS-LTE로 훈련지별 대피상황을 보고받았다. 훈련이 진행된 27개 마을의 관할 지방산림청이 ‘주민대피 완료’ 보고를 마친 오후 4시를 즈음해 훈련은 종료됐다.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에서 대피소로 이동하던 주민이 실신한 상황을 가정해 119구급대원이 응급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에서 대피소로 이동하던 주민이 실신한 상황을 가정해 119구급대원이 응급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재난피해 최소화의 필수요건= ‘신속한 대피’는 재난피해 최소화를 위한 필수요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재리에서의 훈련은 대체로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다만 실제 상황에서도 모든 대피 과정이 훈련과 같기를 바라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산림청이 안내방송 이후에도 일부 주민이 집을 나서지 않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진행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이 훈련은 현장 대피 요구에 버티는 주민을 경찰이 상황을 설명·설득하면서 직접 주민을 밖으로 데려 나오는 일종의 강제 주민대피가 핵심이다.


훈련에서 버티는 역할은 장재리 주민 구자형(70) 씨가 맡았다. 집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산림 공무원의 요구에 “일 없어요. 내가 왜 내 집에서 나가요.” 등으로 어깃장을 놓던 구 씨는 결국 경찰이 등장하면서 대피 대열에 합류했다.


앞서 산림청은 경찰과 ‘사전 협업체계’를 구축해 산사태 등 재난현장에서 대피를 거부하는 주민의 대피를 유도(강제 주민대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시행 중이다.


구 씨는 훈련이 끝난 뒤 “실제 상황에서도 경찰이 주민을 설득해 대피를 돕는 과정이 효과가 있을 것 같다”며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야 산사태 등 재난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고 내 집에서 떠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막상 경찰이 나타나면 ‘정말 나가야 하나’ 하고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재리는 10가구에 주민 23명이 거주하는 작은 시골 마을”이라며 “만약 비슷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주민 스스로 이웃을 챙기면서 재난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을 마치고, 남성현 산림청장이 훈련 참석자들과 미비점 개선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사태 재난대비 대피훈련’을 마치고, 남성현 산림청장이 훈련 참석자들과 미비점 개선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훈련의 끝자락. 산사태 예방지원본부에서는 남성현 산림청장 주재로 훈련 진행 과정에 관한 평가도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남 청장은 “산사태 등 산림재난은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 어느 곳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정부는 재난상황 대처에서 ‘주민대피를 통한 인명피해 최소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산림청의 각오”라며 “올해 처음 진행된 훈련이 장재리 주민에게 대피요령을 몸소 체험·체득하는 기회가 돼 재난상황에서는 스스로 머뭇거림 없이 대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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