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사무관 편지 속 이상한 단어 출처는 사설연구소?

자폐 무약물 치료 주장…고가의 좌뇌보강 권유
대전시교육청, 해당 사무관 직위 해제

교육부 사무관이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보낸 자신의 자녀를 지도하면서 지켜야 할 수칙을 담은 편지와 관련해 이 편지에서 쓰는 어휘가 자폐 등을 무약물 치료한다는 사설 연구소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 누리꾼은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휘가 너무 이상해서 '왕의 DNA, 극우뇌'를 검색해 보니 출처가 이딴 카페"라면서 해당 온라인 카페는 '자폐, 언어장애, 학습장애 무약물 치료한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안아키 카페'라고 지목했다. '안아키'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줄임말로, 2013년 한의사 김모씨가 개설한 카페다. 한때 회원 수가 6만명에 달했던 '안아키'는 자연 치유를 표방하면서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려 하는 등으로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다 결국 폐쇄됐다. 이후 개설자 김모씨는 식품위생법, 약사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한의사 면허가 취소됐다.

자페 등을 무약물 치료한다는 연구소의 인터넷 카페 홈페이지[이미지출처=해당 카페 홈페이지 캡처]

자페 등을 무약물 치료한다는 연구소의 인터넷 카페 홈페이지[이미지출처=해당 카페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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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안아키'로 지목된 이 카페는 모 연구소 공식 카페라는 설명과 함께 '획일적 교육으로 아이 잡았고 흉내내기 교육으로 아이 망친다!'는 표어를 내걸고 있다. 2011년부터 활동한 이 카페의 매니저인 연구소장 A씨는 ADHD 소아 환자에게는 왕의 DNA가 있으며, 이들은 우뇌가 극도로 발달한 '극우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소 상담의 주된 내용은 이른바 '좌뇌 보강'이다. 연구소 측은 ADHD 소아 환자를 비롯해 자폐 등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들에게 좌뇌 보강을 받을 것을 강요한다. 2019년 기준 ADHD 소아 환자의 '좌뇌 보강' 한 달 비용은 취학 전 180만원, 초등 고학년 210만원 전후로 알려졌다.


소장 A씨의 치료법은 ▲고개를 푹 숙이는 인사는 자존감을 하락시켜 뇌 기능 저하로 연결되므로 강요하지 않기 ▲무리한 요구에 거절하지 않고 재미있게 응대해 뇌 기능 활성화 ▲아이를 어른처럼 대우해 영웅심을 높이면 뇌 기능이 빠르게 안정됨 ▲'갑'의 입지를 느껴야 유익한 신경전달물질이 생산되므로 내려다보지 않기 ▲왕자·공주 호칭 사용해 우월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기 ▲사과는 뇌 기능을 저해시키므로 잘못이 있다면 악수, 허그 등으로 대체하기 등이다. 또 연구소에서는 부모들에게 '첫째가 왕의 DNA를 가졌으면 둘째를 낳아서 신하이자 장난감으로 줘라', '둘째를 못 낳으면 강아지라도 들이라'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 소속 사무관이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보낸 편지.[이미지출처=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교육부 소속 사무관이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보낸 편지.[이미지출처=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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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초등교사노조에 따르면 교육부 사무관 B씨는 지난해 10월 3학년 자녀의 담임 교사 C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고, C씨는 관련 법령에 따라 즉시 직위 해제됐다. B씨는 C씨 후임으로 온 담임교사에게 자녀를 지도하면서 지켜야 할 수칙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에는 "'하지 마, 안돼'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 가두시면 자존감이 심하게 훼손된다"는 당부와 함께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등 9가지 요구사항이 담겼다.


한이 연구소가 제2의 '안아키'로 지목된 데 대해 해당 연구소에서 치료 중인 한 부모는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누리꾼은 '안 그래도 설 곳 없는 우리 아이들, 안아키 취급까지'라는 게시물을 통해 "소장님이 부모에 주는 미션지를 필터링 없이 몇 년간 교사에게 보내고 교사를 직위해제 시킨 사건으로 난리가 났다"면서 "아무리 말해도 우리 이론을 사이비 취급하는 이 한국교육현장에서 발붙이기 힘들다. 마녀사냥당하는 기분이 들어 너무 힘들다"고 괴로워했다. 이어 그는 "학교 선생님에게 보냈다는 그 미션지 극비 아니냐? 그 사무관이 여기서 보강을 한 사람이 맞는지 너무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전시교육청은 11일 모 학교 행정실장으로 근무 중인 B씨에게 직위 해제를 통보했다. 전날 교육부는 B씨의 부당행위 의혹에 대전시교육청에 직위해제를 요청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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