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를 이끈 이차전지주가 최근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면서 수십조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혼란한 가운데 신용거래융자 잔고와 미수거래까지 늘고 있어 증시 불안의 '뇌관'이 되고 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20조597억원을 기록해 20조원을 넘어섰다. 투자자들이 증권사 돈을 빌려 주식을 산 후 갚지 않고 남은 금액이 20조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올해 1월과 비교하면 약 27% 증가했다. 신용융자 잔고가 20조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4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2년간 신용융자 잔고 추이를 보면 2021년 9월13일 25조6540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당시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장세에서 주가가 오르자 빚을 내는 투자자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외 증시가 하락세에 접어들자 빚투가 사그라들었다. 신용융자 잔고는 지난해 7월 18조원 규모로 줄었고, 올해 1월까지도 15조원대에 머물렀다. 그러다 이차전지주 투자 광풍이 불면서 신용융자 잔고 규모가 V자 형태로 급증했다.
빚투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 이자 부담, 반대매매 위험의 삼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난 몇 년 대비 금리가 많이 오른 상태라 이자 부담이 커졌다.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에도 빚투가 늘었지만 그때는 저금리 시대였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우려했다.
미수금 역시 심상치 않다. 미수거래는 증권사에 매수대금의 일부만 예치하고 매수하는 것이다. 2거래일 내에 미수금을 납입하지 않으면 매수 주식이 강제로 청산된다. 지난달 6일 이후 미수거래 규모가 하루 5000억원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28일에는 7733억원을 기록했다. 올 초만 해도 2000억원 언저리에서 오르내린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달 말에는 7290억원으로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7000억원대다(8월2일 기준으로는 5000억원대로 다시 감소). 이차전지주 투자 광풍이 불자 뒤처지면 곤란하다는 포모심리가 확산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수금을 갚지 못해 반대매매 당한 금액도 크게 늘었다. 지난달 28일 하루 동안 684억원의 반대매매가 이뤄졌다. 7월 한달간 반대매매 금액은 1조1963억원으로 전월(9810억원) 대비 2153억원(21.95%)이나 늘었다.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6년 4월 이후 최고 기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반대매매가 늘면 증시 조정이나 급락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빚투 투자자들의 웃을지 울지는 이차전지 수급 쏠림 해소 여부와 여기서 나온 자금, 증시 대기자금의 향방에 좌우될 전망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차전지주 수급 쏠림 영향이 여전한 만큼, 롤러코스터 장세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가 과거 국내 증시의 수급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거래대금에서 수급이 쏠린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전후 수준에서 최고점을 형성한 경우가 많았다. 2004년~2007년 시장을 주도했던 조선 업종은 코스피 거래대금의 20%를 차지하는 수준에서, 2014년~2017년 주도주인 셀트리온 등 제약 업종은 코스닥 거래대금의 30% 수준에서 비중 정점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차전지는 40%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올해 이차전지 업종의 거래대금은 지난 1월과 4월 코스피·코스닥 합산 거래대금의 30% 수준을 기록했고, 최근에는 50% 가까이로도 치솟았다. 이진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7월25일 기준 삼성전자 시가총액(보통주)은 418조원이었고 이차전지 기업의 시가총액 합산액은 472조원에 이르렀다"며 "국내 증시에서 단일 테마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적은 2000년 이후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수급 쏠림에 공매도 논란까지 더해져 전문가들조차 이차전지주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보증권은 이달 증시는 포모심리에 따른 수급 유입과 공매도 투자자 간의 힘겨루기로 변동성이 여전히 클 것으로 내다보며 한차례 쉬어갈 것을 추천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급등락하는 주가를 따라 달려온 투자자들은 잠시 쿨다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타이밍"이라며 "단기 수급을 따라가기보단 차분히 산업과 기업의 펀더멘털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지금은 펀더멘털보다 투자자들의 심리와 프로그램 수급 영향력이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성장에 대한 기대로 많이 오른 종목의 주가 변동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신중한 종목 선택과 매매 시점 판단이 필요한 때"라고 당부했다.
하반기 증시의 또 다른 변수는 증시 대기자금의 향방이다. 현재 증시 대기자금은 최고치다.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달 27일 기준 58조199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월1일(58조7300억원)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투자자 예탁금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판 후 찾지 않은 돈이다.
총선을 앞두고 불어닥칠 수 있는 테마주 열풍도 증시의 변수다. 국내 증시에서는 대통령 선거나 총선을 앞두고 테마주 열풍이 불곤 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이차전지주에 몰린 자금이나 증시 대기자금이 테마주에 집중되면 증시는 요동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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