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생활을 끝내고 최근 과장으로 승진한 김승진 씨는 처음 맞이하는 부서원들을 대상으로 회식 준비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다음 주 전체 회식 있으니, 모두 참석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막내 사원이 "과장님, 저 그날 친구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는 불참이요"라고 답했다. 김 씨는 "전체 회식에 왜 빠지나"라며 "최대한 참석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카톡 대화방에는 한동안 그 누구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김승진 씨의 모습은 권위적인 사람을 이르는 속어인 '꼰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부장급에서는 그런 김 씨를 보고 "후배들이 아주 좋아하겠다. 이렇게 챙기는 부서장이 어디에 있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MZ세대 등 청년들 시각에서 보면 선약이 있다면 불참할 수 있는 게 회식이다. 기업에서 근무하는 김형석(27) 씨는 "회식에 불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를 이유로 지적하는 선배가 있다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직장인 회식 갈등'은 조사 결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직장 회식문화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중복응답)에 따르면 회식이 불만인 이유는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62.6%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밖에도 △상사의 기분을 맞춰야 하는 상황들(53.9%) △개인 시간에 대한 침해·방해(53.9%) △2, 3차로 이어지는 회식문화(45.7%) △ 음주를 강요하는 분위기(40.7%)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17일부터 23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3.0%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한 직장인은 "상명하복을 가장 중시하는 상사는 회식 때마다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한다"며 "업무 관련 지시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고, 문제 제기하는 젊은 직원에게는 '개념 없는 90년대생'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식 참여를 두고 갈등이 일어나는 가운데 부서장들 사이에서는 소위 '까라면 깐다'는 방식의 업무 스타일이 일종의 낭만이라는 의견도 있다. 40대 중반인 한 직장인은 "꼰대라고 말해도 할 수 없지만, 옛날에는 '까라면 깐다' 정신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강압적으로 지시하면 안 되겠지만, '일을 치열하게 해내는 맛' 으로 생각한다. 상사랑 어떤 미션을 해냈다는 느낌이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청년들도 할 말은 있다. 무조건 상사를 꼰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30대 초반인 한 직장인은 "상사들의 지시가 합당하다면, 당연히 기분 좋게 일을 할 수 있다"라며 "다만 업무 시간 안에 지시해줄 것, 비현실적은 업무 지시를 하지 않을 것 등이 지켜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상사가 명심해야 할 5계명'을 꼽았다. 해당 내용은 △까라면 깠던 옛날 기억은 잊는다 △아랫사람이 아닌 역할이 다른 동료다 △호칭, 말 한마디, SNS 한 줄에도 예의를 갖춘다 △휴가나 퇴근에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괴롭힘당하는 직원이 있는지 세심히 살핀다 등이다.
그런데도 상사가 회식 불참에 따른 불이익을 줄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반복적인 술자리 강요나 회식에 참여하지 않은 노동자에 대한 따돌림, 폭언 등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회식 자리가 편안한 자리라는 핑계로 상사가 폭언이나 성희롱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또한 엄연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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