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이 외교가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 성과를 설명하면서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는 영향력 행사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는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 주석을 '독재자'라고 칭하면서 미중 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등을 감안해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대화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22일 외교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역내에서 가장 불안정한 행위자가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중국이 어떤 이유로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한국, 일본과 함께 합동훈련 등 조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치들이) 중국을 겨냥하지 않더라도 중국으로선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악수하는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수행한 뒤 전날 한국을 찾은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동아태차관보 역시 외교부 고위 당국자를 만나 같은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변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북아 역내 안보 문제에 관한 미국의 명분을 챙기면서, 중국의 대북 역할론을 더욱 부각하려는 의도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입장은 중국의 변화에 대한 자신감보다 명분을 챙기면서 중국 책임론을 강조한 것"이라며 "냉정하게 중국이 대북 압박에 동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이 전향적으로 나오려면 미중 관계가 경제·안보 측면에서 모두 공감대를 형성할 정도가 돼야 하는데, 이번 대화 수준으로 입장을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중국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북한에 대해 더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면서도 "미중 간 불신이 팽배하고, 중국이 미국의 역내 정책으로 자신을 봉쇄하고 포위하는 것처럼 느끼는 상황에서 중국의 지원을 기대하긴 매우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만 박원곤 교수는 미중 간 대화만으로도 북한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봤다. 미중 양국이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 계기에 대화 의제로 북한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날 조선중앙통신에 국제문제평론가 정영학 명의로 낸 논평에서 "(블링컨의 방중은) 대중국 압박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도발자의 수치스러운 구걸 행각"이라고 반발했다.
건배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중국은 분명하게 북한의 옆에 서 있다. 지난 3월 중러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선 '쌍중단'을 빼버리며 노골적인 대북 포용 의지를 드러냈다. 쌍중단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 연합훈련'의 동시 중단을 뜻하는 용어로, 중국이 북핵 해법으로 강조해오던 원칙이었다. 이는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재우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에 없다"며 "미중 간 산적한 현안들이 많아 대북 사안보다 우선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중국이 북핵 원칙에서 쌍중단을 뺐다는 것은 '미사일 쏘는 것 정도는 묵인하겠다'는 의미"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비토권을 남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진단했다.
주 센터장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아울러 중국에 대한 우리의 관여를 높이기 위해선 '대화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며 "리스크가 적은 비(非)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으로 위기를 관리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우리도 중국과의 접점을 찾아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잡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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