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문화재청 10월 복원 추진 '광화문 월대'

'월대(月臺)'는 궁궐의 정전 등 주요 건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터보다 높게 쌓은 넓은 기단이다.


'광화문 월대'는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후 270여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정문인 광화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조성했다. 1865~1868년 경복궁 중건을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에는 1866년 3월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는 내용이 있다.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곳은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학계는 경복궁 안팎을 잇는 광화문 월대에서 외국 사신 맞이 등 각종 왕실 행사가 열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광화문 월대유적 전경. [사진=문화재청 제공]

광화문 월대유적 전경. [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25일 광화문에서 월대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 등을 발표했다.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 월대의 전체 규모와 임금이 지나가는 어도, 월대 동편의 모습 등 전체 모습이 확인됐다.


월대는 중앙의 임금이 다니던 너비 7m의 '어도(御道)'를 포함해 남북 48.7m, 동서 29.7m로 육조거리를 향해 뻗어 있다. 동·서 외곽에는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았다.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70㎝ 높게 만들었다.


1890년대까지는 월대 남쪽 계단부는 중앙 어도와 좌우 신료의 길이 모두 계단으로 돼 있었으나, 1900년대 중반 어도 계단이 흙으로 덮여 경사로로 바뀌었다. 1910년대 중반에는 동·서 계단도 경사로로 변경됐고, 1923년 좌우 난간석이 제거되고 월대를 모두 흙으로 덮어 전차선로를 만들었다. 월대 위를 지났던 'Y'자 모양의 전차선로 원형도 드러났는데, 이 선로는 1966년까지 사용되다가 세종로 지하도를 조성할 때 콘크리트에 덮였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오는 10월 궁중문화축전 기간에 맞춰 광화문 월대의 원형을 복원할 계획이다. 원형이 훼손된 뒤 경기 구리시 동구릉 등에 일부 이전됐던 월대의 난간석과 하엽석(荷葉石·난간석 아래 조각된 받침석)을 재사용하고, 전차선로는 경기 의왕시 철도박물관에 보존할 방침이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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