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여론을 의식하며 전기요금 인상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가운데, 이미 요금을 올려 전력 수요 안정화를 이뤄가는 해외 사례가주목받고 있다.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꾸준히 전기요금을 올려왔으며, EU(유럽연합)는 그 결과 지난해 전력수요가 전년 대비 2.7% 줄었다.
18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EU 27개국의 지난해 전력수요는 2809TWh를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2.7% 줄었다. 특히 4분기에는 대폭 오른 요금과 온화한 날씨 때문에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했다.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연료비를 올리고 연료비연동제 단가 조정을 이뤘는데도 전력소비가 2.7% 증가한 것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해외에서도 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 제기는 있었지만, 정부가 잘못한 게 아니고 국제 유가 상승 등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용하는 분위기"라며 "국민 여론을 의식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옥죄는 수준으로 가격을 유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전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전기요금을 올려 에너지효율화 투자 확대를 유도했으며, 이는 GDP(국내총생산) 증가에도 에너지소비는 감소하는 '탈동조화(Decoupling)' 성공으로 이어졌다. 특히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의 3배 수준이지만, 기업들은 에너지효율 개선으로 원가경쟁력을 확보 중이라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스페인 역시 전기 요금이 대폭 오르면서 전기 수요가 지난해보다 줄었다. 스페인 전력 회사 '레드 일렉트리카'에 의하면 스페인의 올해 1분기 전력 수요는 6만2715GWh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1분기보다 2.6% 줄어든 수치다.
프랑스의 경우, 전기료 상한제에 따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전력공사(EDF) 국유화가 진행되고 있다. EDF가 전기료 상한제에 따른 손해 11조원을 배상하라고 정부에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본래 지분의 84%만 소유하던 프랑스 정부는 잔여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려 올해 2월 기준 96%까지 늘렸다. 전기료도 올렸다.
일본 전력회사들은 모두 올해 4월부터 각각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했다. 일본은 지역별로 전력회사가 다르다. 3월 나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해외 시장 뉴스에 따르면 주요 전력회사인 홋카이도 전력 주식회사, 도호쿠 전력, 도쿄전력, 주부전력, 호쿠리쿠 전력 및 주고쿠 전력 모두 인상을 발표했다. KOTRA는 "2022년 10월에 이미 고압 전기 요금이 가장 저렴했던 지난 2021년 2월 대비 약 200% 가까이 상승(고압 요금 기준)한 요금에서 또다시 인상을 예고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대책으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기요금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프랑스처럼 정부가 전력회사를 국유화해버린 사례도 있고, 일단 전기요금을 올린 후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는 나라도 있다"며 "우리나라는 전기요금도 제대로 못 올리고 있고, 한전은 미국 NYSE에 상장된 회사라 국유화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은 주로 분기마다 조정한다. 올해 2분기 전기료는 지난 3월 말 당정협의회에서 발표될 예정이었다. 이미 1분기에 kWh당 13.1원을 올렸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으로 인상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결국 결론이 나오지 못했다. 이후 당정은 2주 넘게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의견 청취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는 지난 6일 한 차례 에너지 전문가와 소상공인, 시민단체 등을 모아 민당정 간담회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간담회 이후에도 인상 폭과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산업계 의견도 청취하겠다고 했다. 오는 20일 국회에서 전기·가스료에 대한 산업계 목소리를 듣기 위해 민당정 간담회를 실시한다.
20일 간담회가 끝난 직후 요금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급격한 요금 인상에 따른 반발 가능성을 여당이 여전히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간담회가 끝나면 요금이 결정될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산업부 관계자는 "모르겠다. 여당이 '이 정도면 됐다'고 느낄 때까지 의견 수렴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전력산업을 공기업이 독점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 교수는 "우리는 한전이 공기업으로써 독점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손을 대면 못 올릴 수밖에 없다"며 "독점 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해 시장의 효율적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독립되고 권한이 보장된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 교수는 "지금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전기위원회는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통신요금을 결정하는 방송통신위원회만큼의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라며 "금통위와 방통위는 위원장이 장관급, 위원이 차관급인 데 반해 전기위는 위원장이 차관급이고 위원이 국장급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법적으로 위원장과 위원의 급을 각각 격상해 권한을 더 줘야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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