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삭발 투쟁을 비롯해 농민 대표자들과 손잡고 총공세에 나서는 한편,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개정안 재발의를 통해 양곡법을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여론이 어느 정도 모아진 만큼 적절한 시일 내 처리하겠다는 입장으로 향후 추가 개정안이 재발의되더라도 국정운영 기조와 원칙에 따라 대응하기로 했다.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가결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3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오는 4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 의결 절차로 밟으면, 이를 재가해 국회로 돌려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충북 청주시에 있는 한 공공비축벼 보관창고에서 관계자들이 온도 습도 등 벼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해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과 업무보고에서 반대 의사를 내비쳤고 지난달 28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부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보고받은 뒤 "국무위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여론 수렴 과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실 등으로 접수된 농민단체들의 건의문을 모두 검토했다는 것이 대통령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농민단체들이 제출한 건의문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른 부작용은 물론 농업 경쟁력 강화 정책에 대한 수립 요구의 목소리도 담겼다.
윤 대통령이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는 지난해 5월 정부 출범 후 첫 거부권 사용이 된다.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의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약 7년 만이기도 하다.
이에 민주당은 총력 대응에 나섰다. 국회 농림수산식품해양위원회 소속 의원들 중심으로 '삭발 투쟁'을 이어가는 한편, 전국 농어민 서명운동과 규탄대회 등을 통해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제주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을 농민과 민생을 위한 입법이 아니라, 오로지 야당과의 대결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며 "대통령이 단 한 번이라도 절박한 농심을 헤아린다면, 절대 이럴 수는 없다"고 비난했다.
국회 농축산식품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여당의 거부권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피력하며 파상공세를 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농민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 거부권 행사 반대를 위한 규탄대회를 연다. 특히 민주당 쌀값정상화TF 팀장인 신정훈 의원을 비롯한 의원과 농민 대표들이 삭발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앞서 국회 농축식품해수위원장인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반대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삭발을 단행한 바 있다.
민주당은 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안을 재발의하는 방식으로 양곡법을 관철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정국 경색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법안 재발의와 재의결 등의 상황이 되더라도 국정운영 기조, 법과 원칙에 따른 선택을 유지할 것"이라며 현재 생산되는 쌀을 시장 소화력과 관계없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 주는 방식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을 계속 알리겠다고 전했다.
다만 양곡관리법을 시작으로 방송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 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 점은 변수로 꼽힌다. 현재 방송법 개정안은 본회의에 직회부된 상태이며 '노란봉투법'은 단독 처리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모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쟁점 법안들로, 자칫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앞세워 국회 입법권을 무시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는 모든 정책에 대해 관련 단체의 입장을 듣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며 연쇄 거부권 행사 우려에 대한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서는 당정이 함께 검토에 나서 위헌 요소, 민생 우려 사안들을 모두 걸러낼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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