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요금 인상 눈치에 멍드는 한전

"오늘 회의가 취소됐습니다. 내일 예정된 회의 일정은 추후 다시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지난 주말인 2일 오후 1시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에게 걸려 온 전화다. 이날 오후 2시에는 산업부가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사장단과 함께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발표 지연에 따른 자구책 마련을 위한 긴급 점검회의를 열 예정이었다. 산업부는 회의에서 이틀 전인 지난달 31일 당정이 올해 2분기 에너지 요금을 잠정 보류한 것과 관련해, 이들 공기업의 누적된 적자 상태와 인상 불가피성을 공개적으로 밝힐 계획이었다.

에너지 업계는 이날 산업부가 당초 계획한 일정을 돌연 취소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산업부는 회의 취소에 대해 "공기업의 재무 상황뿐 아니라 최근 국제에너지 가격, 물가 상승 흐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당정이 요금 인상 보류를 결정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에너지 공기업을 관장하는 소관 부처가 앞장서 인상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정부 측에선 상당히 불편한 입장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어떻든 이번 긴급 점검회의 취소는 확실한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에너지 요금 인상을 둘러싼 당과 정부, 부처 간 불협화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정이 요금 인상을 잠정 보류하기 직전까지, 산업부는 한전 적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단계적 인상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요금 인상이 지연되면 급격한 사채발행이 불가피해 지난해에 이어 채권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고신용 등급인 AAA의 한전채가 시장에 풀리면 일반 기업은 보다 높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4일까지 회사채만 이미 7조6100억원을 발행해 적자가 쌓이고 있다.


한편에선 공공요금 인상이 자칫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를 경계하고 있다. 물가 상승이 서민경제 부담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에서도 섣불리 요금을 인상할 경우 올해 초 난방비 폭탄 사태처럼 여론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근 하락세인 국정 지지율도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당 관계자는 "근로시간 개편안 논란이 이어지면서 이번 에너지 요금인상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핵심은 에너지 가격 정책은 원가 구조를 반영한 합리적 요금 체계 확립 없이는 모두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값싼 전기요금으로 인한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는 결국 국민이 갚아야 할 부채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추진하면서 취약 계층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때다.

[기자수첩]요금 인상 눈치에 멍드는 한전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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