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관계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맨해튼 법정 출두를 앞두고 미국 내에서 정치 성향에 따른 분열이 확인되고 있다. 기소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4~5명은 기소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간 입장차가 확연했다. 기소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뛰어오르는 등 공화당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의 기소라는 이번 사태는 2024년 대선에도 중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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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ABC뉴스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2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돼야 한다고 답했다. '기소 돼선 안 된다'는 답변은 32%, '모르겠다'는 응답은 23%를 기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뉴욕 대배심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기소를 결정한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미 전국 593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4일 오후 맨해튼 법정에 출두해 전직 포르노 배우인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추문 입막음을 위해 돈을 줬다는 혐의를 통지받는 등 관련 절차를 밟게 된다.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이 기소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특히 이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88%가 '기소돼야 한다'고 답했지만 공화당 지지자의 65%는 '기소 돼선 안 된다'고 답해 정치성향에 따른 입장차가 확연했다. 공화당 지지자 중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돼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무당층의 경우 5명 중 2명이 기소를 지지했다. 32%는 기소 반대, 27%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관계 입막음 혐의가 '심각하다'는 답변은 응답자의 50%를 차지했다. 다만 36%는 별로 심각하지 않거나 전혀 심각하지 않다고 답했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4%였다. 이를 정치성향별로 살펴보면 민주당 지지자 10명 중 9명 가까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가 매우 심각(49%)하거나 다소 심각하다(38%)고 답했고, 공화당 지지자 10명 중 6명은 별로 심각하지 않다(19%) 또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41%)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7%는 이번 사건이 정치적 동기에 따른 것이라고 답한 반면, 32%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에 대한 찬반과 무관하게 대부분(79%) 이번 사건이 정치 수사라고 답변했다. 무당층의 48%도 이런 견해에 동의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64%가 '정치수사가 아니다'라고 답했으나, 압도적인 반대는 아니었다고 ABC는 전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잠재적 경쟁자로 거론되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도 "순전히 정치적 목적으로 전직 대통령을 겨냥했다", "공격적이다"며 기소를 비판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함께 전체 응답자의 43%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기소로 선거운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35%는 재선 도전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응답자의 51%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고 했던 것도 기소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응답을 정치 성향별로 살펴보면 공화당은 90%, 무당파의 49%, 공화당의 20%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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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화당 지지층 내에서는 기소 결정에 반발한 결집 효과가 확인된다. 트럼프 캠프측은 "이 마녀사냥은 엄청난 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소 당일 하루에만 무려 후원금 400만달러(약 52억원)가 모금됐다. 이 가운데 25%는 과거 후원 이력이 없는 최초 기부자였다고 캠프측은 확인했다. 이날까지 모금액은 5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내 지지율 역시 반등하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 더힐은 양자 대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57%로 디샌티스 주지사를 무려 26%포인트 앞섰다고 밝혔다. 야후-유고브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52%로 디샌티스 주지사(21%),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5%) 등을 훨씬 웃돌았다. CNN방송은 "지난달 기소가 임박하면서 당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높아졌고, 대부분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수사들이 모두 정치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다수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그리 우려하지 않는다"며 "기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화당 대권 후보로 앞서는 이유"라고 보도했다.
다만 이번 기소가 향후 이어질 '사법리스크'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중도층 이탈로 연결될 것이라는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ABC뉴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범죄를 포함한 20여건의 혐의로 기소됐고, 오는 4일 법원 출두 시 관련 내용이 공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서 나오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중도층과 무당파의 표심을 가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백악관 기밀자료 무단 반출, 2021년 1·6 의회 폭동 사태 선동, 조지아주 선거 개입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번 성관계 입막음 의혹은 이 세건에 비해 강도가 약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법리스크로 중도층, 무당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화당 소속인 애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는 이날 ABC 뉴스에 대선 출마 방침을 밝히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운동을 중단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그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앞서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전 대통령측이 2024년 대선까지 재판을 길게 끌고 가면서 공화당 지지자 집결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정 출두 이후인 4일 밤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지지자 등을 상대로 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법정 출두를 앞두고 뉴욕 맨해튼 일대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에 대비해 뉴욕지방법원 인근 등 맨해튼 주요 도로가 폐쇄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시와 뉴욕시경(NYPD) 역시 지지층의 시위 등에 대비한 비상 계획을 마련한 상태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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